cfs7.blog.daum.netcfs7.blog.daum.net/upload_control/download.blog?fhandle... · 2015-01-21 · 5 ô...

of 85 /85
碩 士 學 位 論 文 指導敎授 徐 溶 源 요한복음의 고별설교 연구 2002 湖 西 大 學 校 大 學 院 神 學 科 新 約 神 學 專 攻 具 湧 杰

Embed Size (px)

Transcript of cfs7.blog.daum.netcfs7.blog.daum.net/upload_control/download.blog?fhandle... · 2015-01-21 · 5 ô...

  • 碩 士 學 位 論 文

    指導敎授 徐 溶 源

    요한복음의 고별설교 연구

    2002

    湖 西 大 學 校 大 學 院

    神 學 科 新 約 神 學 專 攻

    具 湧 杰

  • 요한복음의 고별설교 연구

    이 논문을 석사학위 논문으로 제출함

    2002년 6월

    湖 西 大 學 校 大 學 院

    神 學 科 新 約 神 學 專 攻

    具 湧 杰

  • 具湧杰의 碩士學位

    論文을 으로 判定함.

    審査 委員長 (印)

    審 査 委 員 (印)

    審 査 委 員 (印)

    2002년 6월 일

    湖西大學校 大學院

  • Abbreviations

    HTS Harvard Theological Studies

    JBL Journal of Biblical Literature

    NTSR New Testament for Spiritual Reading

    ZNW Zeitschrift für die neutestamentliche Wissenschaft

  • 목 차

    Ⅰ. 서 론 ·················································································································1

    A. 연구 목적과 중요성 ·······················································································1

    B. 연구 방법 및 범위 ··························································································2

    C. 연구 동향 ··········································································································7

    Ⅱ. 요한복음에서의 고별설교의 위치와 중요성 ·············································13

    A. 요한복음의 구조와 고별설교의 위치 ·······················································13

    B. 고별설교의 통일성과 문학적 수사학적 구조 ··········································22

    C. 고별설교의 중요성 ························································································40

    Ⅲ. 고별설교의 내용분석 ·······················································································43

    A. 첫 번째 고별설교 (13: 31-14: 31) ····························································43

    B. 두 번째 고별설교(15: 1-17) ·······································································50

    C. 세 번째 고별설교(15: 18-16: 33) ······························································53

    Ⅳ. 고별설교의 삶의 자리와 신학적 메시지 ·····················································61

    A. 고별설교의 삶의 자리 ·················································································61

    B. 고별설교의 신학적 기능 ··············································································65

    C. 고별설교의 신학적 메시지 ··········································································68

    Ⅴ. 결 론 ···············································································································77

    참고문헌 ····················································································································81

    영문초록 ····················································································································85

  • - 1 -

    I. 서론

    A. 연구 목적과 중요성

    본 연구는 요한복음에 나타난 예수의 고별설교를 분석하여 고별설교의 삶의 자

    리를 규명하고 고별설교의 기능과 신학적 메시지를 밝히는데 그 목적이 있다. 고별

    설교는 분명히 한 기독교 신앙 집단을 전제하고 있다. 요한 복음의 기자는1) 여러

    곳에서 일인칭 복수를 사용하여, 자신과 자신이 속한 공동체의 흔적을 기록해 놓았

    다. 이것은 그 메시지를 자신의 공동체와 밀접하게 관련시키기 위한 것이다.2) 요한

    공동체3)는 예수의 말씀을 부여받고 신앙의 전통을 유지해 나간 그리스도교 신앙 집

    단이다. 이와 같이 고별설교에는 요한 공동체가 반영되어 있다.

    고별설교는 요한 공동체와 유대교 공동체의 대화로 볼 수 있다. 요한복음서 기

    자는 고별설교를 통해 한편으로는 과거 예수와 관련된 메시지를 전하고 다른 한 편

    으로는 현재 자신이 처해 있는 공동체의 정황을 설명하고 있는 것이다. 요한복음서

    기자는 그 때(예수의 시대)와 지금(요한 공동체의 시대)을 시간적으로 연결시키는

    방법으로 과거의 사건들을 소개하고 있다. 여기서 과거의 역사적인 이야기들은 현

    존 요한 공동체를 위한 상징적인 이야기들이 되고 있는 것이다.

    이와 같이 예수의 고별설교 속에는 요한 공동체의 현재의 모습이 직접, 간접으

    로 반영되어 있다. 요한 공동체는 견고한 공동체를 이룬 것이 아니라 유대교 회당

    으로부터 추방당하는 고통스러운 과정 속에 있었다는 것이 지금까지의 연구의 일반

    1. 본 논문에서 ‘요한복음서 기자’라는 표현은 현존 요한복음서의 최종적 편자라는 의미

    에서 사용한다. 요한복음서가 여러 단계와 오랜 과정을 거쳐 형성된 문서이지만, 요한복음서가

    내적 통일성을 갖고 있는 문서로 보아도 좋을 것이므로 현재의 복음서의 형태를 존중하면서 이

    용어를 사용할 것이다.

    2. 서중석, 「복음서 해석」(서울: 대한기독교서회, 1991), 237.

    3. 본 논문에서는 요한복음서를 생성시키고 신앙의 전통을 형성, 유지해 나간 한 그리스

    도교 신앙집단을 나타내는 용어로서 ‘요한공동체’를 사용한다. ‘교회’라는 용어를 사용하면 현재의

    제도적인 교회를 연상하기 쉬우므로 ‘공동체’라는 용어를 사용한다.

  • - 2 -

    적인 견해이다.4) 요한 공동체의 현재의 모습은 이러한 역사적 정황을 나타내고 있

    으며 동시에 이러한 역사적 정황 속에서의 그들의 자기이해를 나타내고 있다.

    고별설교는 공동체를 향한 예수의 교훈과 유대교와의 차별성을 이해하는데 중

    요한 기준을 찾을 수 있다는 점에서 그 일차적 중요성이 있으며 나아가 예수 운동

    의 중심체로서의 요한 공동체와 유대교의 회당과의 갈등구조를 규명하는데 귀중한

    자료가 되고 있다는 점에서 큰 의미가 있다. 나아가 공동체가 지향하며 적극적으로

    도달해야할 신앙의 지평을 보여주는 메시지를 찾는데 연구의 중요성이 있는 것이

    다.

    B. 연구 방법 및 범위

    성서해석 혹은 성서연구가 쉬운 일이 아니다. 우리가 읽고 해석하는 성서가 지

    금으로부터 이 천년 전에 기록된 문서란 점에서 성서 해석을 위해서 우리가 넘어야

    할 시간적이며 역사적인 장벽이 있다. 또한 성서를 기록한 사람들의 생활과 풍습

    등이 우리와 아주 달랐다는 점에서 그들이 말하고 있는 내용을 올바로 이해하기 위

    해서는 문화적인 장벽을 넘어야 한다. 뿐만 아니라 성서가 우리의 언어와는 아주

    다른 언어로 기록된 문서라는 점에서 성서의 올바른 이해를 위해서는 언어적 장벽

    을 넘어야 할 뿐 아니라, 성서의 원본은 없고 사본들만 존재하고 있다는 점에서 원

    본에 가장 가까운 본문을 찾아야 할 문제도 해결해야 한다.

    성서학자들은 성서본문의 본래 의미를 좀 더 정확히 밝혀내기 위해서 오래 전

    부터 연구 방법론들을 개발해 왔다. 이런 방법론 중 가장 먼저 시작된 것이 “본문

    비평”이다. 성서를 올바로 해석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해석하고자 하는 본문이 과

    연 성서저자가 기록했던 본래의 본문인가 혹은 그 본문과 얼마나 가까운가를 알아

    4. R. E. Brown, 「요한 공동체의 역사와 신학」최흥진 역(서울: 성광문화사, 1994); 김

    득중, 「요한의 신학」(서울: 컨콜디아사, 1994), 167-80.; 서중석, 「복음서 해석」(서울: 대한기독

    교서회, 1991), 237-62, 참조.

  • - 3 -

    보아야 한다. 우리가 읽고 있는 “성서”가 어디까지나 사본들이고 원본이 아니라는

    점을 고려할 때 원본에 아주 가까운 본문을 찾아내어 해석을 시작하는 일은 성서해

    석에서 아주 중요할 뿐 아니라 다른 어떤 연구에 앞서 이루어져야 할 작업이다.

    다음으로 나타난 것이 “자료비평”이다. 특히 공관복음을 중심으로 복음서의 기

    자들이 구전 뿐 만 아니라, 이미 기록된 문헌자료를 이용해서 복음서를 구성했음

    이 밝혀졌다. 따라서 그들이 사용했던 자료들이 어떤 것이며, 어떤 식으로 이용했는

    가를 규명하는 것이 복음서 구성 및 본문 이해에 큰 도움이 되게되었다. 이런 자

    료비평이 공관복음서에만 국한 된 것은 아니었다. 최근에는 바울서신들도 일정한

    자료를 이용했음이 밝혀지고, “공관복음서 대조”에 해당하는 “바울서신 대조”가 나

    타나기도 했다.

    다음으로는 1차 대전 직후에 발전된 “양식비평”이 있다. 양식비평은 우리로 하

    여금 예수께서 십자가에 돌아가신 후부터 복음서 및 성서가 문서로 기록되기 전까

    지 수 십 년 동안 모든 전승자료들이 신앙공동체 안에서 구전(oral tradition)으로

    전해졌다는 사실과 또한 구전 과정에서 일정한 문학적 양식을 갖게 되었고, 그런

    양식들이 설교 혹은 신앙교육 등 구체적인 ‘삶의 자리’ 속에서 형성되고 수집되어

    전달되었음을 밝혀주었다. 더구나 기록된 성서의 말씀들은 초대교회가 전해 받았던

    전승들의 전부가 아니라 많은 것 중에서 교회의 구체적 필요에 따라 이용되었던 일

    부에 지나지 않는 다는 사실(요20: 25)도 알게되었다. 따라서 우리가 성서를 읽을

    때 우리가 읽는 부분의 자료가 어떤 삶의 자리에서 어떤 형태로 이용되던 것이고

    어떤 목적으로 전해지던 것인지를 아는 것이 중요하다.

    뒤를 이어 “편집비평”이 나타났다. 초대교회가 오랜 동안 설교 혹은 교육 등의

    구체적인 삶의 자리 속에서 구전 전승들을 수집하여 이용하였지만, 우리가 지금

    읽고 있는 성서는 문자화된 기록이지 구전전승은 아니다. 구전전승을 수집하여 지

    금 우리가 읽고 있는 성서를 기록한 사람들은 성서기자들이다. 그러므로 초대교회

  • - 4 -

    가 어떤 목적으로 구전을 수집 전달했느냐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성서기자가 문서

    를 기록할 당시 어떤 대상에게 어떤 목적으로 어떤 글을 기록했느냐가 더 중요하

    다. 즉 저자의 편집의도를 알아내는 것이다. 저자의 편집의도는 전승자료들의 편집

    순서, 편집손질 혹은 자료들을 삽입해 넣은 문맥의 설정 등을 살펴봄으로서 어느

    정도 알아낼 수 있다.

    위의 비평 외에도 “구조주의적비평” , “기호학적비평” 등 많은 비평이 있다. 이

    런 비평 방법들은 우리가 읽고 있는 성서가 기록 당시 어떤 대상들에게 어떤 형태

    로 어떤 목적으로 어떤 의미를 갖는 본문으로 기록되었는지를 보다 잘 알 수 있게

    해준다.

    수사학은 효과적인 의사 전달의 수단으로서의 언어에 관한 종합적인 이론을 말

    한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수사학을 “설득을 위한 가능한 모든 수단”을 연구하는 학문

    이라고 정의했다.5) 이러한 정의는 말하는 사람 또는 글을 쓰는 사람이 특정한 의도

    를 가지고 청중이나 독자를 설득하는 기술을 연구하는 학문이라는 오해를 받아왔

    다. 마치 수사학은 진실을 가지고 있지 않은 사람이 말재주를 가지고 청중이나 독

    자를 우롱하는 기술을 가르치는 학문인 것으로 비판되어 온 것이다. 그러나 아리스

    토텔레스는 진실이 거짓에 의해 가리워 지지 않게 하기 위해 진실을 말하는 사람이

    잘 말해야 될 책임이 있다는 입장에서 수사학을 발전시킨 것이다. 아리스토텔레스

    는 인간의 이성과 진리의 최후승리를 믿으면서도 진리를 전파하는 사람의 기술 부

    족으로 거짓을 전달하는 사람에게 논쟁에서 지지 않기 위한 방법을 모색한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말하는 사람이 청중에게 보여주는 신뢰도, 그리고 청중의 감정에 대

    한 호소, 또한 논리 정연한 주장을 잘 조화시켜서 전하려는 진리를 잘 배열하고 완

    전히 외운 다음에 적절한 언어를 구사해서 잘 전달하는 것을 목표로 각 단계에 필

    요한 이론을 정립한 것이다.6)

    5. 현경식, 이성호, 「수사학적 성경 해석의 이론과 실제」(서울: 성서연구사, 2000), 11.

    6. 상게서, 12.

  • - 5 -

    수사학이 발전되면서 어느 한 분야에만 국한하는 것이 아니라 전체적으로 전하

    려고 하는 내용을 어떻게 효과적으로 상대방이 받아들일 수 있도록 할 것이냐 하는

    모든 문제를 다루는 학문으로 전개되어 온 것이다.

    그러나 오늘날 수사학은 그 범위나 이해의 폭에 있어서 고전적인 틀을 벗어나고 있

    다. 오늘날의 수사학은 한정된 언어 행사만이 아니라 모든 인간의 언어 및 비언어

    적 행동을 그 연구 대상으로 삼는다. 현대 수사학을 이끌고 있는 학자들은 모든 인

    간의 이야기 속에는 그 주장하는 바의 이념적인 동기가 들어있다고 본다. 그러므로

    어떤 이야기든지 간에 가치 중립적인 이야기는 없으며 모든 이야기 속에는 말하는

    사람의 세계관이 들어가 있고 어떤 형태로든 듣는 이에게 영향을 미친다는 의미에

    서 수사학적이라고 설명한다.7)

    정리하면 고전수사학에서는 화자나 저자가 전하려는 전형적인 메시지가 있고,

    전하고자 하는 정황도 전형적이었으며, 담론의 형태도 전형적이었다. 신약성경이 기

    록된 시기는 이런 고전수사학이 잘 알려지고 사용되던 시기며 지역적으로도 헬라

    문화가 익숙하던 지역에서 읽혀졌던 것이다. 그러므로 신약성경 연구자들이 고전수

    사학에 많이 의존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이 경우 첫째, 본문을 쓴 저자의 의도와

    둘째, 본문을 설득력 있게 만든 저자의 기술이 관심의 대상이 된다.8)

    반면 현대수사학은 화자와 청중, 저자와 독자가 함께 진리를 발견해 가는 과정

    을 다루는 학문으로 인식되고 있다. 이를 성서해석에 적용하면 이미 주어진 것으로

    추정되는 성서저자나 본문의 구조에서 파악된 본문의 의미를 찾는 것이 아니라, 본

    문과 함께 해석자가 의미를 찾아가는 방법론이 되어야 할 것이다. 그것은 해석자가

    누구냐에 따라 본문의 의미가 다르게 드러난다는 말도 된다. 그렇기 때문에 수사학

    적 성경해석은 정답 찾기의 해석이 아니라 본문과 해석자가 만나 가는 과정이라고

    할 수 있다. 그렇게 해서 본문의 저자와 본문해석자가 오늘 우리에게 말씀하시는

    7. 상게서, 13.

    8. 상게서, 22.

  • - 6 -

    하나님의 뜻을 찾아가는 것이다.9)

    본 논문은 고별설교를 분석하여 고별설교에 나타난 고별설교의 신학적 기능과

    메시지를 찾고 요한 공동체가 당면한 삶의 자리와 관련지어 이 설교의 의미를 찾는

    데 그 중점을 두고 있다. 고별설교는 다양한 전승의 단계를 통하여 형성된 문서이

    지만, 문학적으로 통일성이 있는 문서로 볼 수 있다. 그러므로 요한복음서 본문의

    맥락 속에서 강조되는 개념을 파악하는데 중점을 두면서 서술해 나갈 것이다. 문학

    적 방법과 더불어 당시에 널리 알려졌던 수사학적 방법도 사용하여 본문의 의도를

    보다 더 정확하게 파악하고자 한다.

    본 논문은 고별설교를 기술하는데 있어서 다음과 같은 구조와 내용으로 전개하

    고자 한다.

    서론에서는 고별설교 연구의 중요성과 연구방법론을 제시하고 요한복음 연구동

    향을 다양한 학자들을 통해 알아본다.

    2장에서는 요한복음의 구조와 고별설교의 위치를 연구한다. 요한복음 내에서

    고별설교가 어떤 위치에서, 어떤 역할을 하고 있는지에 대해서 고찰하고 이런 고찰

    을 바탕으로 고별설교의 통일성과 문학적, 수사학적 구조에 대해서 알아본다.

    3장에서는 고별설교의 양식, 구조, 배경을 살펴보고 내용분석을 통해서 세밀한

    본문 이해를 시도하며, 고별설교의 신학적 의도가 무엇인지 분석을 통해 밝히고자

    한다.

    4장에서는 고별설교에 나타난 삶의 자리와 신학적 기능을 살펴본다. 특히 요한

    복음의 고별설교가 제기하는 신학적 메시지가 무엇인지 알아보고자 한다.

    결론에서는 각 장을 통해 살펴본 신학적 메시지를 정리하고, 고별설교가 오늘

    의 우리들에게 전하고자하는 의미가 무엇인지를 제시하고자 한다.

    9. 상게서, 46.

  • - 7 -

    C. 연구동향

    20세기 중반에 요한복음서 연구는 복음서의 목적과 정황에 관한 관심에 집중되

    었다.10) 요한복음서의 정황에 관한 연구가 주로 대두되었는데, 즉 요한복음서 저자

    의 사상과 표현방식에 영향을 끼친 사상적 배경보다 그러한 사상을 형성하고 영향

    을 준 보다 구체적 정황에 대해 논해왔다.

    주요 논의들은 요한복음서는 복음서가 선포된 공동체의 외적인 특별한 정황에

    관련되어 쓰여졌음에 관심 한다. 마틴(L. J. Martyn)은 요한복음서가 간접적으로 예

    수 전승을 수립한 요한 공동체의 역사적 정황을 반영한다고 보고 그 삶의 정황을

    유대교 회당과의 관계에서 규명하고, 요한 공동체의 역사를 재구성했다.11) 브라운

    (R. E. Brown)도 마틴과 유사하게 유대회당과 대립, 갈등 관계에서 요한 공동체 역

    사를 재구성한다.12) 이들 연구들은 요한 공동체가 당시 외적인 타 공동체들과 대립,

    경쟁하면서 발전되었다는 것에 일반적 일치를 보여준다.

    이런 연구경향은 고별설교 연구에도 적용되어, 고별설교가 유대교회당과 대립

    한 요한 공동체의 정황을 반영한다는 것을 보여준다. 따라서 고별설교에 관한 연구

    는 요한 공동체의 정황과 밀접히 연관지어 다루어질 수 있다. 그러나 이전 고별설

    교에 관한 연구는 역사적 정황과 통합됨 없이 문학적 구성문제에 국한되어 왔다.

    고별설교가 요한 신학의 핵심으로 복음서의 절정을 이룬다고 슐츠(S. Schulz)

    가 언급한바 있지만, 이전 연구는 이 설교의 중요성을 밝혀 내지 못했고 그 설교의

    구성이나 주제의 난해한 문제들을 해결하는데 집중되어왔다. 즉 고별설교 연구들은

    10. R. Kysar, The Fourth Evangelist and His Gospel (Minneapolis, MN:

    Augsberg Publishing House, 1975), 147.

    11. L. J. Martyn, History and Theology in the Fourth Gospel, 2d ed. rev and

    enl. (Nashiville: Abingdon Press, 1979), 37 이하 참조.

    12. R. E. Brown, The Community of the Beloved Disciple. (New York: Paulist

    Press, 1979.); 「요한 공동체의 역사와 신학」최홍진역 (서울: 성광문화사, 1994)

  • - 8 -

    구성이나 재배열의 문제에 집중되었고, 상대적으로 고별설교의 중요한 역할을 밝혀

    내지는 못했다.

    이런 한계를 넘어 고별설교의 문학적 구조와 신학적 경향, 삶의 정황의 문제를

    가장 밀접히 통합시킨 개척적인 연구로는 베커(J. Becker)의 논의를 들 수 있다.13)

    베커는 고별설교가 논쟁적 성격을 갖고 있다고 보고 이 담화가 교회 내적 논쟁을

    반영한다고 한다. 즉 요한 공동체 안에 재림을 고대하단 미래적 종말론자들의 견해

    를 수정하기 위해 설교가 쓰여졌고 따라서 예수의 현재적 현존을 강조하고 있다고

    본다.14)

    그러나 베커의 논의는 결정적으로 난점을 지닌다. 그의 논의는 근본적인 면에

    서 수정을 요구하는데 그 이유는 설교가 유대교와의 갈증관계에서 생겨난 논쟁이라

    는 실제적 문제를 간과하고 있기 때문이다. 고별설교의 목적을 단순히 긴박한 재림

    에 대한 재해석으로 보는 것은 당시 재림의 문제가 그다지 실제적 문제가 아니라는

    면에서 수정을 필요로 한다. 요한 저자 당시에는 성령의 활동으로 인한 예수의 임

    재를 확증하고 있었음으로 예수의 부재와 외면상의 지연은 하등의 문제가 되지 않

    았다.15)

    월(D. B. Woll)은 요한복음서에서 초월 자로서의 예수가 요한복음서에 강조되

    는 데, 이런 기독론을 소유한 공동체에서 예수의 부재는 극복되어야 할 문제로 취

    급되지 않았고, 오히려 예수의 부재는 복음서의 현저한 동기중의 하나로 본다.16)

    따라서 고별설교를 교회 내적 논쟁으로 본 베커의 주장은 타당성이 없다.

    13. J. Becker, "Die Abschiedsreden Jesu im Johannes Evangelium" ZNW 59

    (1970): 215-46.

    14. Ibid. C. K. Barrett도 이와같은 견해를 취하는데, 예수의 긴박한 재림을 고대하던

    자들의 견해를 수정하기 위한 것으로 본다. C. K. Barrett, 「요한복음」 (서울: 한국신학연구소,

    1984), 280-83.

    15. H. C. Kee, Jesus in History, 2d ed. (New York: Harcourt Brace Jovannovich,

    Inc, 1977), 147.

    16. D. Bruce Woll, Johannine Christianity in Conflict, (Chico, California:

    Scholars Press, 1981), 32.

  • - 9 -

    고별설교를 집중적으로 연구한 월의 논의는 베커와 달리 공동체 내에 초기 카

    리스마적 예언자들을 상정한다.17) 월(Woll)은 첫 번째 고별설교가 예수의 중재적 권

    위를 강조하는데, 이는 요한 저자가 자기들의 권위를 예수의 절대적인 권위와 혼동

    하던 당시 카리스마적 지도자를 의식하고 이를 견제하기 위한 것으로 본다.18) 그러

    나 월도 고별설교가 요한 공동체의 내적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것으로 본 것은 설

    득력이 약하다.

    요한 공동체 정황에 관한 연구는 요한 공동체가 직면한 문제는 유대교와의 갈

    등임을 보여주는데 고별설교도 요한 공동체의 외부적 논쟁을 반영한다고 볼 수 있

    다. 세고비아(F. F. Segovia)는 첫 번째 설교에 나타난 제자들의 몰이해는 배후에

    요한 공동체와 유대교 회당과의 갈등을 반영한다고 한다. 유대인들을 선교하는 과

    정에서 부딪힌 강한 반대가 제자들 사이의 좌절과 위험을 느끼게 했을 것이며 따라

    서 이 담화는 유대교 회당과의 대립가운데 예수의 선포를 계속하도록 확신을 강화

    시키고 있다고 볼 수 있다.

    세고비아는 마틴의 역사 재구성을 토대로 고별설교의 정황을 설정, 고별 설교

    가 유대교 회당과 심각한 논쟁을 반영하고 있다고 본 것이다. 마틴은 요한복음서의

    “이중드라마(two-level)"형식을 지적하면서 예수와 유대인과의 논쟁은 복음서 저작

    당시에 요한 공동체가 회당과 갈등하고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고 한다.19) 일련의 논

    의는 마틴의 가설을 지지한다. 믹스(W. Meeks)에 의하면 요한 전승은 최소한 부분

    적으로 기독교 공동체와 적대적인 유대교 공동체와의 상호 관련성 속에서 형성되었

    다고 한다. 따라서 요한 저자가 유대교와 요한 공동체와의 적대감이 급증될 때 복

    음서를 저작했음으로 저자의 관심은 유대교의 핍박과 적대감 속에서 자기 공동체의

    신앙을 강화하려는데 있다고 볼 수 있다. 따라서 요한복음서는 사실상 선교적 목적

    17. Ibid.

    18. Ibid., 109-128. 요한 공동체에서 카리스마 지도자들이 그들의 권위를 예수의 권위

    와 혼동함으로써 문제를 야기 시켰고 따라서 이를 견제하려는 것이 요한기자의 의도였다고 본다.

    19. L. J. Martyn, History and Theology in the Fourth Gospel. 37 이하.

  • - 10 -

    을 위함이 아니라 유대인과의 적대적 관계에서 요한 공동체가 참 이스라엘로 자기

    이해를 강화시키려 한 것으로 볼 수 있다.20) 따라서 요한복음서는 사실상 선교적

    목적을 위함이 아니라 유대교인과의 적대적 관계에서 요한 공동체가 참 이스라엘로

    자기 이해를 강화시키려 한 것으로 볼 수 있다.

    이는 브라운과 슈나켄버그(R. Schnackenberg)의 견해에서도 지지된다. 이들은

    요한복음서가 선교적 의도가 있다해도 유대인들의 반박에 대해 기독교의 정당성을

    강조함이 주목적이라 본다.21) 요한복음서가 실제적으로 유대교회당과 대립하고 핍

    박받던 요한 공동체의 정당성을 변증하기 위한 의도를 갖는다는 것은 고별설교에서

    강하게 나타난다.

    따라서 고별설교의 목적을 공동체의 내적 문제 즉 미래적 종말론 자나 카리스마

    적 지도자들의 입장을 수정, 견제하기 위한 것으로 볼 수 없고, 요한 공동체의 자기

    변증을 위한 유대교회당과의 외적인 논쟁을 반영하는 것으로 볼 수 있다.

    이런 정황을 전제로 고별설교를 해석할 수 있는바 즉 유대교회당과 대립, 갈등

    하고 있던 요한 공동체에게 고별설교의 신학적 주제가 갖는 의미와 기능이 무엇인

    가를 물을 수 있다.

    이런 연구는 요한 복음서의 신학적 주제와 삶의 정황과를 통합시켜 그 실제적

    의미를 규명하려는 한 시도가 될 것이다.

    20. Erich Grasser, “Die Antijududische Polemik im Johanneseuagelim,” NTS

    10 (1946-65):74-79 quoted in Kysar, The Fourth Evangelist and His Gospel, 153.

    21. Ibid., 153.

  • - 11 -

    Ⅱ. 요한복음에서의 고별설교의 위치와 중요성

    A. 요한복음의 구조와 고별설교의 위치

    1. 요한복음의 구조22)

    마르틴 루터는 그의 요한복음 주석에서 이 복음서의 특별한 가치와 소중함을

    표현하기를 “다른 모든 책들 중에서 이 복음서는 최고의 것이다. 이 책은 일부 사

    람들이 말하는 것처럼 그 내용이 어렵고 침침한 것이 아니라 그 반대로 그리스도의

    신성을 가장 명료하게 밝히고 있다”23)고 하였다. 죤 칼빈 역시 그의 요한복음 주

    석 서두에서 이 복음서의 진가를 밝히기를 “요한은 주님의 영혼을 보여주고 있다.

    이곳에 생생하게 묘사되어 있는 그리스도의 능력을 맛본 사람들은 누구나 후에 공

    관복음 기자들이 우리에게 나타낸 구속 자에 대해 기록한 것을 읽을 때 큰 도움을

    얻을 것이다.”24)고 쓰고 있다. 그 후에도 수많은 성서 해석 자들의 영혼과 마음을

    밝혀주었던 ‘복음서의 왕’ 요한복음은 오늘날에도 밭에 감추인 보화처럼 퇴색되지

    않는 광채와 생명력을 지닌 채 찾아오는 이들을 반기고 있다.

    요한복음 역시 다른 글들과 마찬가지로 먼저 전달할 필요가 있다고 판단된 어

    떤 정보가 수집되어 있다. 그런데 ‘자료-정보’는 저자라는 ‘사람’을 통하여 글로 쓰

    여지기 때문에 그가 의도한 목적이 자료의 엮음, 곧 글에 영향을 미치기 마련이다.

    그런데 수집된 자료가 생긴 배경에 따라 그는 저자라기보다 편집자일 수도 있다.

    또 그가 처한 정황과 주변 환경 적인 요소 역시 글에 영향을 미친다. 이런 이유로

    글을 읽는 독자는 다음 정황을 기본적으로 파악함으로 본문의 의미를 파악해야 한

    22. 요한복음의 구조 분석을 세밀히 한 논문으로 나채운, “요한복음의 구조에 관한 연

    구,” 「교회와 신학」21 (1989): 158-180. 이상훈, 「해석학적 성서이해」(서울: 대한기독교서회,

    1992), 323-32 참조.

    23. 성종현 “요한 복음서에 대한 최근 연구동향1,” 「교회와 신학」22 (1990): 158.

    24. 죤 칼빈, 「요한복음 1」 존칼빈 성경주석출판위원회역 (서울: 성서교재간행사,

    1983), 19.

  • - 12 -

    다. 누가 메시지를 전달하는가?(저자), 누구에게?(독자), 무엇을?(주제), 언제?(시간),

    어디서?(장소), 언어는?(저자와 독자 사이의 공통언어), 무슨 목적으로?(지향). 우리

    가 요한복음의 본문을 더 잘 이해하기 위해 환경 적인 요소와 외형적인 구조를 잘

    이해해야 한다.

    요한복음의 저자는 예수의 생애에 일어난 사건들을 해석하여 깊은 신학적 의미

    의 초석을 세웠다. 저자는 예수 사건들을 심층적으로 통찰하여 구속론으로 성부. 성

    자. 성령의 관계를 세웠다.25) 요한복음만의 독특한 언어, 상징 그리고 독특한 신학

    적 관점만이 있음을 알 수 있다.

    지금까지 요한복음의 구조에 대해서는 많은 학자들이 규명하려 했지만 그 결과

    는 실망스러운 좌절이었다. 불트만은 현재의 요한복음이 처음의 원형이 아니라 손

    을 댄 편집자들의 간섭으로 혼란이 가중되어 도저히 원형을 찾을 길이 없는 형태의

    문서가 되고 말았다고 설명하였다.26) 베커는 요한 공동체 문헌에 대한 연구에 있어

    서는 아직도 많은 미결된 문제점들이 산적해 있다고 지적하고 여기에 대한 학자들

    간의 일치된 합의점을 찾기에는 아직도 많은 연구와 시간이 필요할 것이라고 언급

    한다.27)

    요한복음의 구조에 대한 학자들의 입장은 크게 세 가지로 분류된다.28)

    첫 번째 입장은 슈바이써(E. Schweizer)와 럭스툴(E. Ruckstuhl) 등의 주장이다.

    이들은 문체 분석 및 통계학적인 연구를 통해서 요한복음 1장부터 20장까지가 하나

    의 문체적 통일성과 단합된 일치성을 보이고 있다고 주장한다. 이 입장은 1장부터

    20장까지의 통일성을 의심할만한 특별한 이유나 근거가 없다는 비교적 주관적 판단

    을 통해서 지지를 얻고 있다.

    두 번째 입장은 벨하우젠(J. Wellhausen), 브라운(R. E. Brown), 리히터(G.

    25. 이상훈, 「해석학적 성서이해」(서울: 대한기독교서회, 1992), 304.

    26. 상게서, 323.

    27. 성종현 “요한 복음서에 대한 최근 연구동향1,” 160.

    28. 성종현, 「신약총론」(서울: 장로회신학대학, 1991), 694-739.

  • - 13 -

    Richter), 티센(H. Thysen) 등의 요한복음 연구서에서 나타나고 있다. 이들은 오늘

    날의 요한복음서 이전에 원 복음서가 있었다고 보고 이 원 작품에 요한 공동체에서

    후에 신학적 보완. 변경 및 해석작업을 가했다고 전제하여 요한 공동체내에서의 신

    학사적 발전과정, 특히 요한 공동체 기독론의 발전과정을 중시한다.

    세 번째 입장은 불트만(R. Bultmann)의 ‘세 자료설’로부터 시작하여 약간 변형

    된 모습으로 베커(J. Becker), 필하우어(Ph. Vielhauer), 콘첼만(H. Conzelmann), 슈

    나켄버그(R. Schnackenburg)등에게서 발견되어 진다. 불트만은 요한 저자가 이미

    형성된 세 개의 자료 ① 예수의 이적 자료(2: 11; 4: 54; 20: 30등) ② 예수의 자기

    계시적 말씀 자료(6: 35; 8: 12; 10: 7; 11: 25; 14: 6; 15: 1) ③ 수난사 및 부활사 자

    료(18-20장)를 토대로 요한복음서를 기록했다고 보고 여기에 후대의 편집자가 5장

    28-29절, 6장51절c-58절 및 그 외 약간의 부분에서 수정. 보완적인 편집작업을 가했

    다고 분석한다.

    베커(J. Becker)는 불트만의 가설을 나름대로 수정 보완하여 자신의 새로운 설을 주

    장한다. 그는 요한복음서 저자가 두 개의 자료(이적자료와 수난사자료)와 단편적 구

    전전승들(서두의 로고스찬가 포함)을 사용하면서 복음서를 기록하였다고 보고 후에

    요한 공동체에서 추가적 편집작업이 이루어졌다고 설명한다. 베커는 비교적 장기간

    신학적 보완조정작업이 있었으며 요한 공동체에서 이 복음서가 정경 화되면서 완료

    됐다고 이해한다.29)

    요한복음의 일부 본문 배열 순서가 바뀌었다는 위치조정의 문제는 그 동안 줄

    기차게 논란되어 왔다. 이미 타티안(Tatian)이 주 후 2세기경에 5장과 6장의 순서를

    바로 잡는 시도를 했고 20세기 들어서 불트만에 의해서 배열순서 재조정 작업이 극

    단적으로 이루어져 왔다. 그러나 오늘날 많은 학자들이 불트만 식의 위치 바꿈 작

    업에 대해서 회의를 나타내 보이고 있고 대체적으로 5장과 6장의 순서 바뀜, 그리

    29. 성종현, “요한복음서에 대한 최근 연구 동향Ⅰ,” 167.

  • - 14 -

    고 7장 및 13-17장의 일부 부분만 위치가 잘못된 것으로 평가하고 있다.30)

    요한복음 기자는 요한 복음서를 어떤 구조로 짰는가? 이 구조에 일관하는 해석

    법의 기본정신은 이것이다. 아들-화육한 말씀은, 부활한 주님으로부터 파견된 성령

    의 도움으로 교회 안에서 이해되고 해석된 하나님 계시의 유일한 중재인이다. 이

    계시를 받아들이면서 예수를 믿는 사람은 영원한 생명과 미래의 부활이란 약속을

    받게 된다.

    찬가체의 서문(1: 1-18)과 서술체의 결말(21: 1-25)을 보면, 첫 부분은 기원론

    (protologia)으로 향하고 마지막 부분은 교회의 역사와 종말론(escatologia)으로 향한

    다. 요한복음은 “예수께서는 당신이 하나님으로부터 왔다가 하나님께로 돌아간

    다”(13: 3)는 구조로 요약된다. 요한복음 중심부분의 구조를 좀더 자세히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1. 예수가 아버지로부터 파견됨(1: 19-12: 50)은 표적, 대화, 담화를 통한 예수의

    역사적인 계시로 특징지어지는데 4부분으로 세분할 수 있다. 가. 입문(1: 19-51). 세

    례 요한이 증인으로 두 장면에 나오고, 다음 두 장면에는 첫 제자들이 등장한다. 입

    문은 예수께서 나다나엘에게 하신 말씀으로 끝맺는다. “이보다 더 큰일을 보게 될

    것이다”(1: 50). 그럼으로써 저자는 독자들이 표징을 기다리도록 한다. 나. 가나에서

    가나까지(2: 1-4: 54). ‘가나’에서 벌어진 두 개의 표적이 반복구문을 이룬다. 여기서

    표적들이 처음으로 이야기된다. 가나에서 첫 표징이 행해진 다음, 성전을 정화하고

    예수께서 선포하신 말씀 가운데 영광의 계시가 나타난다. 그 뒤로 유대인 니고데모

    (3장), 수가성의 사마리아 여인(4장), 왕궁의 이방인 관리(4: 46-54)가 신앙으로 예수

    께 가까이 다가간다. 다. 유대의 축제들(5-10장): 안식일(5장), 해방절(6장), 초막절

    (7-9장), 성전 봉헌절(10장) 등이 그리스도론 적으로 재해석된다. 이 대목은 세례자

    요한에 대한 마지막 언급으로(10:40-42) 마무리된다. 라. 마지막 대목(11-12장): 예

    30. 상게서, 176.

  • - 15 -

    수의 죽음을 예고하고 준비하는 몇 개의 삽화가 소개된다. 전체적으로 표적의 책은

    이중의 반성으로 끝난다. 곧 표적을 보고도 믿음을 갖지 못하는 이들에 대한 저자

    의 성찰(12: 36a-43)과 믿지 않는 이들을 심판할 계시의 담화에 대한 예수의 고찰

    (12: 44-50)이다.

    2. 예수가 아버지께로 돌아감 예고(13-20장)는 두 번째 부분의 단일 주제로 볼

    수 있다. 이 부분은 세 대목으로 구분된다. 가. 고별사(13-17장): 발을 씻기고 나서,

    예수께서 아버지께 기도 드리며 돌아감을 예고하는 것으로 마무리한다. 나. 두 번째

    대목(18-19장): 수난을 이야기한다. 사람의 아들이 들어올려지는 시간, 그의 활동과

    (19: 30) 마지막까지 이르는 그의 사랑(13: 1)을 완성하는 시간이다. 창으로 그를 찌

    른 것은 의미가 있었다(19: 31, 36, 37). 들어올려진 예수는 세상의 죄를 없애는 하

    나님의 어린양이고(1:29) 고통받는 하나님의 종이다. 다. 세 번째 대목(20장): 예수

    께서 성령을 주신 후에 아버지께 되돌아가는 것을 이야기한다.

    요한복음서는 예수께서 그리스도이시며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믿으면서 그의 이

    름 안에서 생명을 얻도록(20: 30-31), 사람들 사이에 화육하신 예수의 계시가 점진

    적으로 드러나는 구조로 짜여져 있다.

    20세기 중반 이 후 요한복음서 연구는 복음서의 목적과 정황에 관한 관심에 집중

    되고 있으며, 주요 논의들은 요한복음서는 복음서가 선포된 공동체의 외적인 특별

    한 정황에 관련되어 쓰여졌음에 관심하고 있다.

    요한복음은 고도로 논쟁적인 성격의 책이다. 이러한 논쟁이 일관하고 있는 성

    격은 이 복음서가 유대인에게 대항하기 위한 것임을 의심 없게 한다. 그러면 누구

    를 위한 글인가. 저자의 분명한 의도는 누가 독자이든 저들은 유대회당의 지도자들

    을 경계하여야 하며, 유대인들이 그리스도와 기독교를 결의에 차서 반대하는 현실

    에서(5: 19-47; 6: 32-70; 7: 1-8; 9: 39-10: 39) 굴하지 않고 능히 변증할 수 있는

    신학적 변증으로 무장되어야 할 것과, 앞으로 중대한 어떠한 박해의 역경에서도 능

  • - 16 -

    히 당당하게 설 수 있게 용기와 힘을 주는데 있었다.

    저자 요한의 기본적인 대상은 유대 회당과 이미 경계선을 치고 기독교 공동체

    를 지키려고 어려움을 겪고 있는 하나의 유대인 기독교의 집합체라고 할 수 있다.

    이와 같이 요한복음의 대상을 설정하고 보면, 20장 31절의 “오직 이것을 기록함은

    너희로 예수께서 하나님의 아들 그리스도이심을 믿게 하려 함이요 또 너희로 믿고

    그 이름을 힘입어 생명을 얻게 하려 함이라”는 말씀에 함축성이 있음을 이해해야

    한다는 것이다.

    요한의 두 번째의 대상은 기독교 공동체 안에 머물러 있기는 하나 박해와 죽음의

    위협 때문에 예수 신앙이 흔들리고 있는 상태의 유대인 기독교인들이다(16: 1-4).

    이러한 그들을 위해서 저자는 예수의 “내가 이것을 너희에게 이름은 너희로 실족하

    지 않게 하려 함이니”(16: 1)라는 말씀을 기억해서 서술했다31).

    요한 저자는 독자들이 유대교의 반론에 맞서기 위하여 신학적 요구를 절실하게

    필요로 하므로 그러한 요구에 부흥하기 위하여 집필했다. 그러므로 저자는 그리스

    도를 위한 명확한 결단과 반기독교 유대교의 신학자들의 반론에 능히 설 수 있는

    신학적인 무장을 제공하려고 했다32).

    결론으로 저자 요한이 복음서를 집필한 이유는 그의 공동체와 함께 아직 회당에

    머물러 있는 약한 기독교인들을 돕기 위해서였다고 말할 수 있다.

    2. 고별설교의 위치

    요한복음서 13장에서 17장은 고별담화의 형식으로 되어 있다. 이 중에서 13장

    에서 16장은 “고별설교”로 그리고 17장은 “고별기도”로 분류할 수 있다. 요한복음에

    나오는 “고별설교”는 다른 복음서들에 평행본문이 없는 요한의 특수본문이란 점에

    31. 이상훈, 「요한복음」대한기독교서회 창립 100주년기념주석 35 (서울: 대한기독교서

    회, 1999), 28.

    32. 상게서, 29.

  • - 17 -

    서 요한복음을 이해하는 데 있어서 결코 무시될 수 없는 중요한 부분이다. 또한

    “고별설교”가 요한 자신의 특별한 구성이라는 점 이외에도, 그 분량이 결코 무시될

    수 없을 정도로 상당한 분량이라는 점에서 요한복음 연구에서 결코 무시되거나 도

    외시될 수 없을 것으로 보인다.33)

    1. 1: 1-18 prolog(선재하신 Logos의 계시와 화육) 2. 1: 19-12장 표적의 책. 3.

    13-20장 수난과 영광의 책. 4. 21장 Epilog(교회와 제자직 위임)의 구조속에서 고

    별설교는 수난의 공동체, 고난받는 성도들에 대한 강화형식의 내용을 담고 있다. 특

    별히 예수를 믿음으로 영생을 소유한 성도들과 공동체는 세상과 유대인들로부터의

    받는 박해와 소외와 고통의 삶에 대한 의미와 그것이 예수께서 당하신 것과 동일한

    것임을 정당화하는 내용으로 짜여있으며 십자가와 부활을 보도하는 앞부분에 위치

    하고 있다. 이것은 마가의 수난예고 본문(8-10장)이 자리한 것과 유사한 구조이다.

    요한복음에는 마태와 누가에서 보도되는 예수의 교훈과 어록의 평행이 없으나 이

    고별설교는 요한복음에 있는 예수의 공동체 신앙윤리 규범이라고 할 수 있다. 마태

    복음의 산상설교(5-7장)가 안디옥 예수공동체의 카테키즘적 구조와 특징을 가지고

    있고 누가복음의 예수의 어록들이 선교적 구조와 기능을 갖고 있다면 요한복음의

    이 고별설교는 제자직을 수행하는 공동체의 생존과 사명과 제자직 수행의 길을 제

    시하고 있다.

    김득중은 고별 설교가 과거의 요한복음 연구에서 무시되어 왔음을 지적하며 다

    음의 이유를 들고 있다.34) 첫째로는 최근의 요한복음 연구의 주요 관심이 한 동안

    주로 “표적 자료”에 기울여지는 경향을 보여왔다. 둘째로는 요한복음의 고별설교가

    문학 양식상 아주 비슷한 설교들이나 대화의 말씀들(주로 1-12장에 나오는)과 더불

    어 함께 다루어지면서 “계시담론”으로 규정됨으로써35) 이 고별 설교의 독특성이 쉽

    33. 김득중, 「요한의 신학」(서울: 컨콜디아사, 1990), 117.

    34. 상게서, 117-18.

    35. 불트만은 「요한복음서 연구」574. 이하에서 이와 같이 주장하고 있다.

  • - 18 -

    게 도외시되는 경향을 보여왔다. 셋째로는 고별설교를 포함해서 요한복음에 나오는

    다른 말씀 자료들을 연구하는데 있어서 주로 주제적 분석에 치우치는 경향이 강했

    던 반면에(가령 ‘보혜사’, ‘재림’ 등), 고별설교의 전체적 문학양식이나 문학적 구조,

    그리고 그 신학적 역할 등에 대해서는 별다른 깊은 관심을 기울이지 못했다. 넷째

    로는 고별설교가 요한복음에서는 하나가 아니라 여러 개의 복합적인 구성임에도 불

    구하고 고별설교의 문학적 구성에 대한 논쟁이 너무 일방적으로만 발전됨으로써

    13-16장에 이르는 문학적 단위의 연속이나 고별 설교의 숫자 및 범위에 대해서는

    별다른 논의를 하지 못했었다. 그러나 최근에는 고별설교에 대한 관심이 높아 가면

    서 이에 대한 논문이나 저술들이 활발하게 이루어지고 있다.

    고별설교를 연구하려면 요한복음 전체에서 고별설교를 바라보는 시각이 중요하

    다. 요한복음의 역사적 진전과정에 따르면 고별설교는 예수께서 유대 종교 지도자

    들에게 붙잡혀 십자가에 달려 돌아가시기 전날 밤, 그의 제자들과 함께 마지막 유

    월절 만찬을 가지는 중에 주어졌다(13: 1-3. 18: 1-10). 그러므로 예수의 아버지께로

    의 귀환, 그의 십자가의 죽음과 부활 사건에 의한 영광 받으심, 그리고 예수와 제자

    들과의 일시적인 이별과 그로 인한 제자들의 불안과 근심이 고별설교의 역사적 무

    대장치를 형성한다. 고별설교에는 기존의 연구가 주목하지 못한 요한 공동체의 단

    면이 반영되어 있다. 기존의 연구는 요한 공동체와 세상과의 갈등의 정황으로부터

    고별 설교에 반영된 요한 공동체를 재구성하지 못했고, 세상으로부터 요한 공동체

    를 보전하고자 하는 요한복음서 기자의 전략으로서 고별설교를 읽어내지 못했다.

    왜 예수는 남겨진 제자들을 위해 말씀하는가? 그들이 갈등하고 있는 세상의 정체는

    무엇이며, 그들은 세상과 어떤 갈등을 한 것인가? 왜 예수는 그들의 보전을 원했으

    며, 그들은 세상으로부터 어떻게 보전될 수 있는가? 고별설교에는 요한 공동체가

    경험하고 있는 갈등을 효과적으로 해소하려는 요한기자의 노력이 나타나있다. 또한

    고별 설교를 통해 요한기자가 요한 공동체에 전하고자 하는 중요한 신학적 의도를

  • - 19 -

    담고 있다. 따라서 요한복음서 전체의 맥락에서도 고별설교는 그 중요성이 인식되

    어 활발한 연구가 진행되고 있다.

    B. 고별설교의 통일성과 문학적 수사학적 구조

    예수의 고별설교를 진지하게 연구하려면 몇 가지 전제가 충족되어야 한다.36)

    첫째는 고별설교의 본문 자체를 언어학적으로, 문학적으로 분석 검토하여 본문 자

    체가 지니고 있는 강조점을 찾는 일이다. 둘째는 고별설교 자체를 좁게는 그 본문

    이 직접 위치하고 있는 문단 단위에, 넓게는 요한복음서 전체의 전망에 놓고, 고별

    설교 본문의 흐름과 강조점이 전후 문맥과 자연스럽게 조화를 이루는가를 살펴보는

    일이다. 셋째는 본문의 삶의 자리, 곧 본문을 말씀하신 예수 자신과 그 본문을 기록

    한 요한복음 기자의 역사적, 사회적, 종교적, 정치적, 경제적 정황을 재구성하여 독

    자에게 전달하고자 했던 핵심적인 메시지를 찾아내는 일이다. 물론 이 메시지는 삶

    의 자리와 잘 부합되어야 한다.

    1. 고별설교의 통일성

    요한복음에 기록된 예수의 마지막 가르침, 즉 고별설교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먼저 고별설교의 구조에 대해서 연구되어야 한다. 요한 복음에는 13장에서 16장에

    이르기까지 고별설교가 기록되어 있다. 반면에 다른 복음서는 요한복음만큼 분명하

    게 구별지어 기록하지 않고 있다. 요한복음에는 예수께서 마가의 다락방에서 유월

    절 만찬을 마친 후에 베드로를 꾸짖고 고별사를 시작하시고, 말씀을 마치신 후에

    “이에 예수께서 이 말씀을 하시고 제자들과 함께 기드론 시내 저편으로 가시니”(요

    18: 1)라고 기록되어 있는 데 반해 마태복음과 마가복음에는 예수와 제자들이 감람

    산으로 가는 도중에 베드로를 꾸짖은 것으로 기록되었고37), 누가복음에는 유월절

    만찬 전후에 있었던 것으로 보이는 예수의 짤막한 교훈이 기록되어38) 있을 뿐이다.

    36. 최갑종, “고별설교에 나타난 보혜사 성령,” 「그말씀」(1994 오월): 129.

    37. 마26: 30-34, 막14: 26-32.

  • - 20 -

    이 문제를 설명하려는 시도들이 고별설교의 본문들에 나타난 사건과 말씀들의 연속

    을 역사성 그대로 인정하자는 주장과 편집설, 자료 배치설 등으로 주장되어 왔다.

    그러나 최근에 와서는 제4복음서의 저자가 어떻게 자기 자신의 신학적인 의도를 가

    지고 그가 가지고 있던 전승을 다시 해석하고 있는가 하는 문제로 연구의 초점이

    돌려가고 있는 실정이다39).

    고별설교는 요한복음 13: 31-16: 33장의 부분이다. 요한복음 17장도 고별설교의

    일부로 생각되기도 했지만, 17장은 예수의 마지막 기도문 형태로 되어 있기 때문에

    “고별기도”로 분류될 수는 있어도 고별설교로 분류될 수는 없다. 그러나 요한복음

    14-16장도 내용적으로 하나의 설교를 구성하고 있는 것으로 보이지 않는다. 상당히

    복합적인 내용들의 편집형태를 보이기 때문이다40). 고별설교의 구조에 관한 문제는

    연구자들의 견해에 따라 다양한 학설이 제기되고 있다41). 여러 신약학자들이 고별

    설교를 분석하면서, 현재 우리가 사용하는 성서의 고별설교의 구성에 이의를 제기

    하였는데 대표적인 학자들의 분석을 소개한다.

    불트만(Bultmann)은 13-20장의 내용을 “요한 공동체 안에 나타난 영광의 계시”

    라고 하면서도, 13-17장의 본문이 잘 정돈된 것으로 보지는 않았다42). 그는 14장 25

    절의 “내가 아직 너희와 함께 있어서 이 말을 하였거니와”로부터 31절의 “오직 내

    가 아버지를 사랑하는 것과 아버지의 명하신 대로 행하는 것을 세상으로 알게 하려

    함이로다”는 분명히 고별사의 결론이며, 14장 마지막 구절인 “...일어나라 여기를 떠

    나자”(31절)라는 구절은 어떤 경우라도 18장 1절의 “예수께서 이 말씀을 하시고 제

    자들과 함께 기드론 시내 저편으로 나가시니...”와 연결 될 수밖에 없다고 주장한다.

    따라서 15-17장이 이차적인 삽입이거나 아니면 자리를 잘못 차지하고 있다는 추론

    38. 눅22: 14-38.

    39. 이상호, “요한 신학의 최근 연구 동향,”「신학사상」13 (1976): 308-309.

    40. 김득중, 「요한의 신학」 121.

    41. 도한호, “요한복음 14-16장에 나타난 파라클레토스의 의미,” 「복음과실천」21

    (1998 겨울): 109.

    42. R. Bultmann, 「요한복음서 연구」 허혁역 (서울: 성광문화사, 1990), 501-503.

  • - 21 -

    이 불가피하다 주장한다43).

    로버트손(Robertson)은 13장에서 17장을 한 덩어리로 보고있다. 마가의 다락방

    에서 예수께서 발을 씻어주신 후 고별사가 시작되었으며(요13: 12), 14장 31절까지

    의 고별사는 마가의 다락방에서 이루어졌고, 31절에서 “일어나라 여기를 떠나자”는

    말씀과 함께 마가의 다락방을 떠나 겟세마네 동산을 향해 기드론 시내 길로 가는

    도중에 이루어진 교훈과 기도였다고 주장한다44).

    가톨릭 신학대학의 이영헌은 그의 논문에서 고별사를 두 부분으로 나눈다. 13

    장 31절에서 14장 31절이 고별사이며, 15-16장은 누군가에 의해 추가된 고별사로

    취급한다45).

    베커(J. Becker)는 고별사를 (1) 13: 31-14: 31 (2) 15: 1-17 (3) 15: 18-16: 15

    (4) 16: 16-33)의 넷으로 구분하고 첫 번째 고별사만이 요한에 의해 기록되었고 그

    나머지 것들은 내용의 중복성과 강조 점의 차이로 미루어 볼 때 다른 기록자에 의

    해 후에 추가된 것이 분명하다고 주장한다46).

    버나드(Bernard)는 ICC주석의 요한복음에서 13장 30절, 즉 “유다가 그 조각을

    받고 곧 나가니 밤이러라”는 구절 다음에 15-16장 전체를 배열하고 그 다음에 다시

    13장 31-38절을 배열하고 그 다음에 14장을 가져다 놓았다.

    이상에서 살펴보았듯이 대부분의 학자들은 요한복음의 고별설교 본문이 본래

    통일적인 하나의 설교로 구성된 것이 아니라, 본래는 두 개 혹은 세 개의 독립적인

    설교로 구성되어 편집되어 있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아직도 의견의 일치를 보지 못

    하고 있는 것은 어느 설교가 복음서 저자에 의한 것이고 어느 설교가 후대 편집자

    에 의한 것인가 하는 문제이며, 또한 그런 상이한 설교들이 단계적으로 구성되어

    43. 상게서, 120-21.

    44. A. T. Robertson, 「복음서 대조서」 도한호역 (서울: 요단출판사, 1972), 228-33.

    45. 이영헌, “요한의 공동체와 빠라클레토스,” 「신학전망」93 (1991 여름): 2, 9, 14.

    46. 서중석, “제일고별연설에 반영된 요한 공동체의 정황,” 「신학사상」72 (1991 봄):

    35.

  • - 22 -

    현재의 본문 가운데 편집되어 들어오게 된 구체적인 공동체의 정황은 어떤 것이며,

    각 설교들의 신학적 의도와 목적은 무엇인가에 관한 것들이다47).

    2. 문학적, 수사학적 구조

    A) 문학적, 수사학적 분석

    (1) 문학적 유형: 고별설교의 특이한 문학유형은 구약성서에서, 신약성서에서, 그

    리고 외경 및 위경 에서도 비슷한 문학유형이 많이 발견되고 있다. 고별 설교의 비

    교는 내용에 못지 않게 그 문학유형의 비교가 중요하다. 뮬러는 구약과 구약 위경

    에서 그 같은 고별설교의 형식을 수집하여 요한복음서의 고별설교와 비교하였다.

    구약의 경우를 살펴보면 먼저 내용면에서는 ‘세상을 떠나는 선생과 그의 뒤를 잇게

    될 후계자의 연속적인 관계를 강조’하는 이야기들이 나타난다. 모세와 여호수아의

    관계가48) 그러며 엘리야와 엘리사의 경우도49) 그러하다. 모세의 고별설교의 핵심

    부분에서 모세는 여호수아에게 안수를 하고 자신이 가지고 있었던 지혜의 영을 여

    호수아가 받을 수 있게 하였다50). 모세는 민족의 위대한 지도자였다. 그가 세상을

    떠나게 되었을 때 그를 따르던 백성들의 실망과 낙심은 이루 말할 수 없이 컸다.

    아직도 광복의 날을 실현하지 못했던 것이다. 그 때에 모세는 자기의 죽음을 슬퍼

    하는 백성들에게 마지막 유언을 남긴다(신명기 32: 44 이하). 유언 가운데는 백성들

    을 위로하는 말이 뒤따른다. 열두 지파 하나 하나를 위하여 축복하며 위로한다(신명

    기 33: 1 이하). 위로하는 가운데서 모세는 후계자에 관한 이야기를 남긴다. 모세는

    자기와 같은 예언자를 그의 후계자로 하나님께서 세워주신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

    후계자는 마침내 가나안을 정복하고 광복의 꿈을 이룬다.

    열왕기하서에 나오는 엘리야의 경우에 있어서도 모세와 같다. 엘리야가 세상을

    47. 김득중, 「요한의 신학」 126.

    48. 신명기 32장 44절 이하.

    49. 열왕기하 2장 1-15절.

    50. 신명기 34장 9절.

  • - 23 -

    떠나게 될 무렵 자신의 우계자가 될 엘리사에게 고별 담화를 남긴다. 후계자인 엘

    리사는 스승이 가진 영의 두 배를 얻기를 원했다. 처음에는 실패하였으나 마침내

    하나님으로부터 그와 같은 능력을 받게 된다(열왕기하 2: 1-15).

    요한의 고별설교의 경우도 그런 시각에서 구약의 고별담화와 비교될 수 있다.

    신약성서에서는 밀레도에서 행한 바울의 고별연설(행20: 17-18)과 종말에 일어날 일

    에 대한 예수의 교훈(막13장; 마24장; 눅21장)이 이에 해당된다51).

    구약의 정경에 못지 않게 위경에도 많은 고별문들이 있다. 열 두 지파 조상들

    의 유언이나 유빌리서, 에녹1서, 모세의 유언(승천), 그리고 제2 에스드라서에서 조

    상이나 지도자들의 유언이 발견된다.

    야곱의 마지막 유언이 유빌리서에 기록되어 있다. 아들 요셉에게 남긴 말이다.

    야곱은 자녀들을 축복한다. 이집트에서 나그네의 삶을 살고 있는 그의 자녀들에게

    위로와 격려의 뜻으로 이집트가 장차 망하게 될 것을 이야기한다. 요셉에게는 특별

    히 땅을 물려주고 야곱은 세상을 떠나 조상들과 함께 묻히게 될 것을 이야기한다.

    조상들의 모든 책들은 레위에게 물려주고 대대로 물려줄 것을 당부한다(유빌리서

    45: 13-16)52). 에녹은 승천을 앞두고 자녀들에게 올바로 살 것을 부탁한다. 현실의

    세상에서는 불의한 사람들이 더 잘살게 되는 것을 보지마는 거기에 유혹되지 말라

    는 것이다. 마침내 심판을 받고 불의한 사람들이 멸망하게 될 것이기 때문이라는

    것이다(에녹 91:4 이하)53).

    에스라가 죽음에 이르렀을 때의 기록이 제 4 에스드라서(제 2 에스드라스)에 나

    타난다. 에스라는 백성들을 모아 놓고 다음과 같은 말을 남긴다. 조상들에게 하나님

    은 계명을 주셨다. 그러나 조상들은 죄를 짓고 유업의 땅에 이르지 못했다. 만일 판

    단을 바로하여 자신의 마음을 다스리면 살게 되고 죽은 다음에도 하나님의 긍휼하

    51. 이상훈, 「요한복음」 433.

    52. R. H. Charles, Apocrypha and Pseudepigrapha, Vol Ⅱ (Oxford: Clarendon

    Press, 1913), 76.

    53. Ibid., 261.

  • - 24 -

    심을 입게 될 것이라는 것이다(14장)54). 에스라는 하나님께 성령을 내려 주실 것을

    간구 한다. 그리고 불꽃과 같은 색깔의 컵을 받아 마시고 지시대로 몇 명의 동료와

    함께 아흔 네 권의 책을 썼다는 것이다.

    이와 같이 이스라엘의 섬김을 받아오던 민족의 지도자나 예언자들의 임종에 관

    한 문헌들이 정경 외에도 위명의 형식으로 많이 있었던 것을 알 수 있다. 무엇보다

    중요한 공통점은 떠나는 스승이 가지고 있는 하나님의 영을 후계자에게도 받도록

    하여 준다는 것이다. 이러한 약속이 고별설교문의 가장 중요한 핵심을 이루고 있

    다55). 이를 정리하면 문학형식으로 몇 가지의 특징이 열거된다. 첫째, 위인이 죽음

    의 자리에 자기의 추종자들을 모아 저희들이 무엇을 지킬 것인가를 권면하고 미래

    에 관하여 교훈 한다. 둘째, 스승의 유지를 받들어 계승하기 위하여 제자들이 피차

    어떻게 처신해야 하는가를 교훈 한다. 셋째, 이 고별교훈을 주는 자가 미래에 될

    일을 예견하여 제자들이 당할 운명을 언급하여 저희를 축복하고 원수들에게 저주를

    내린다. 넷째, 떠나가는 마당에 그 위인은 자기의 유업을 계승할 후계자를 정한

    다56).

    요한복음의 고별설교는 이런 문학형식과 완전히 일치한다. 이 고별설교는 예수

    께서 아버지께로 떠나시기 전에 준 말씀이다. 뒤에 남을 제자들은 두려움에 가득

    차 있지만 예수는 저희들을 위로하고, 권면하고, 교훈하신다. 예수는 평화와 기쁨과

    안위를 약속하시고 성령을 보내실 것을 말씀하신다.

    (2) 수사학적 분석: 요한복음의 고별강화는 분명한 시작과 결말을 가지고 있는

    하나의 수사단위(a rhetorical unit)로 볼 수 있으며, 또한 당시에 헬라어를 사용하던

    세계는 저술가들이나 독자들이나 모두 수사학의 교육에 접한 일이 있거나 수사학적

    인 영향을 피할 수 없었다는 것을 이해한다면, 본문의 분석에 수사학을 사용하는

    54. Ibid., 622-23.

    55. 이상호, “파라클레토스-요한복음서의 보혜사 성령,” 「신학과 현장」4 (1994): 51.

    56. 이상훈, 「요한복음」 433.

  • - 25 -

    것은 아주 타당하다고 볼 수 있다.

    수사학은 “설득”에 관련된 이론으로서 “무엇을 어떻게 설득할 것인가”에 관련하고

    있다. 여기서 설득의 의도와 내용은 설득의 방법과 불가분의 관계에 있는데, 본 연

    구는 이러한 점에서 설득의 방법들을 분류해서 분석해 본다면 설득의 의도와 내용

    에 관한 정보도 얻을 수 있다는 전제로 출발한다. 본 연구는 설득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세 가지 입증 형태인 에토스, 파토스, 로고스의 분석을 주로 할 것이며, 이

    러한 윤리적(에토스), 감정적(파토스), 논리적(로고스) 설득의 정도, 분포, 내용 등을

    근거로 저자의 수사의도를 파악할 것이다. 이러한 분석에 본문에 자주 등장하는 주

    제(theme)나 모티프(motif)를 적절히 연결할 수 있다면 저자의 수사의도에 접근할

    수 있으며, 저자의 수사의도를 어느정도 파악할 수 있다면 익히 알려진 요한복음의

    기록 경위 또는 목적, 요한 공동체의 정황 등에 대해서도 조명을 얻을 수 있을 것

    이다.

    요한복음의 고별강화가 수사의 구분으로 볼 때에, 법정적(forensic), 심의적

    (deliberative), 전시적(epideictic) 수사 중, 전시적 수사에 해당한다고 본다. 전시적

    수사는 원래 신이나 인간을 찬양하거나 그 대적자를 비난하는 형태를 취하고 있는

    것이지만, 사실상 명백히 법정적이 아니거나 심의적이 아닌 것은 모두 전시적 수사

    에 해당한다고 할 수 있다.

    본 연구는 전체적인 플롯(plot) 안에서 고별강화의 위치를 이해하면서, 요한복

    음 13-17장을 아래와 같이 분류하여 분석하고자 한다. 서론(exordium, 13:1), 서술

    (narratio, 13:2-300, 분할 또는 주제제시(partitio, 13:31-38), 입증(probatio,

    14:1-16:33), 결론(peroratio, 17장). 본 연구에서 수사의도는 예수나 등장 인물의 의

    도라기보다는 화자를 통해 이야기하는 내포저자의 의도로 설정하여 파악할 것이다.

    또한 요한복음 기록의 배후에는 브라운 등에 의해 제시된 요한 공동체의 삶이 어떤

    형태로든지 존재했다고 가정한다. 이를 종합해 본 연구는 고대의 수사학을 사용하

  • - 26 -

    고 이런 결과를 역사적 연구와 연결시키려는 시도를 하고자 한다.

    ⅰ) 에토스: 에토스는 연설가의 윤리적 성품으로 호소하는 것을 말하는데, 아리

    스토텔레스는 에토스를 가장 효과적인 설득 또는 입증 수단으로 생각한다.57) 그 이

    유는 논증의 강도는 저자나 연설가 자신에게서 나오는 신뢰성에 비례하기 때문이

    다. 특히 청중이나 독자가 확실성을 가지고 있지 않을 때에 그들이 의지할 수 있는

    것은 연설가나 저자의 인품뿐일 것이다. 또한 논리적으로 확실하고 아름다운 표현

    을 사용한다고 해도 저자에 대한 신뢰감이 없다면 그것은 당연히 설득력이 없을 것

    이다. 이러한 면에서 퀸틸리안(Quintilian)은 에토스란 “성품을 옳게 보이려는” 일이

    아니며, “좋은 문체”를 지니는 것도 아니며, “온전한 인간”이 되는 것이라고 했다.58)

    에토스 사용의 실례를 들어보자. 먼저 본 수사단위의 시작인 서론(13:1)은 완벽

    한 에토스를 구현하고 있다. “유월절 전에 예수께서 자기가 세상을 떠나 아버지께

    로 돌아가실 때가 이른 줄 아시고 세상에 있는 자기 사람들을 사랑하시되 끝까지

    사랑하시니라.” 이 구절은 전술한 바와 같은 에토스의 중요한 세 가지 자질을 모두

    드러내고 있다. 즉 화자(話者)는 예수께서는 미래의 자신의 죽음과 그 때까지도 “이

    미 알고 계시며”(-온전한 지식), 그러한 자신의 죽음을 앞에 두고 자신을 위해서는

    아무 일도 하지 않으시고 오직 “자기 사람들을” 사랑하는 것에 전념하시며(선의),

    이제까지도 그들을 사랑했듯이 그들을 “끝까지”(성실성) 구체적으로 사랑하셨다(부

    정과거 사용)고 선언하고 있다. 특별히 서론에 있어서 에토스의 강조는 독자들의 시

    선과 마음을 얻고 사로잡는 데에 있어서 중요하다.

    서술 부분(13: 2∼30)에서 화자는 바로 예수께서 그러한 사랑을 제자들의 발을

    씻김으로 실천하시고 계시다는 것을 생생한 현재형들을 사용하여 서술해 줌으로써,

    자신의 해설이 신뢰할 만한 것임을 증명하고 있다. 이 부분에서도 예수께서는 아버

    57. Aristotle, The "Art" of Rhetoric, I.2.4, 17.

    58. Quintilian, Instituto Oratoria, I.9.1, trans. H. E. Butler, Loeb Classical

    Library(Cambridge: Harvard University Press, 1920), 11.

  • - 27 -

    지께서 모든 것을 자기 손에 맡기신 것과 자신의 신적인 기원과 아버지께로 돌아가

    게 될 것을 온전히 알고 계신다(13: 3, -‘지식’). 전시적 수사에서 신이나 인간의 “기

    원”이나 탄생을 축하하거나 강조하는 것은 중요한 요소이다. 여기에서 역시 예수는

    스스로 발씻김의 본을 보임으로써 자신의 “선의(善意)”를 나타내신다. 그는 또한 평

    정을 잃지 않고 침착함을 통해 자신의 “성실성”을 보여 주신다. 베드로는 어리석은

    질문과 말을 되풀이 하지만 예수께서는 절대로 그를 책망하지 않으신다. 몇 번이고

    침착하게 대답해 주신다.

    주제제시 부분(13: 31∼38)에서도 예수는 전적으로 제자들에게 관심을 보임으로

    써 “선의”를 보여 주신다. 예수가 제자들을 “소자들아”(13: 33)라고 호칭하고 있는

    것은 도한 그들을 아끼는 마음을 잘 보여 주고 있다. 그는 서로 사랑하라는 새 계

    명을 주실 때에, 말로만 명령하지 않으시고, “성실한” 자신의 삶을 근거로 명령하신

    다-“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 같이 ……”(13: 34). 예수께서는 또한 베드로가 자신을

    세 번 부인할 사실을 이미 “알고 계시며” 언제 부인할 것인지도 :알고 계신다:(13:

    35). 이처럼 주제 제시 부분에서도 에토스의 세 가지 중요 요소와 함께 예수의 에토

    스는 계속 부각되고 있다.

    입증 부분(14: 1∼16: 33)은 고별강화의 주요 부분으로서 이 부분은 또 다시 세

    부적인 몇 개의 입증 부분으로 나눌 수 있지만, 전체적으로 볼 때에, 죽음을 앞 둔

    예수는 자신의 죽음에 대한 고민이나 기도보다는 계속적으로 일관되게 제자들의 삶

    에만 관심을 보인다(선의, 성실성). 14장 1절이 “Μή ταρασσέσθω"(근심하지 말라)라는

    강한 부정 명령어로 시작하는 것은 제자들을 아끼는 예수의 관심을 잘 표현해 주고

    있다. 예수는 단지 끝까지 자기 사람들을 사랑하시기를 넘어서서 그 이후까지도 사

    랑하신다. 그의 사랑에는 사실상 끝이 없다. 그는 자신이 떠난 후에도 보혜사를 보

    내주시도록 기도할 것이며(14: 16), 그들을 고아처럼 버려 두지 않고 돌아오실 것이

    다(14: 18)-“성실성.” 예수는 이제부터 제자들을 “친구”로 부르며(15: 15), 그 친구를

  • - 28 -

    위해 목숨을 버림으로써 사랑을 완성하실 것을 암시하신다(15: 13). 또한 예수는 제

    자들의 마음에 근심이 있다는 것을 아시며(16: 6), 그들의 질문의 의도를 읽어내시

    며(16: 19), 미래에 그들이 겪게 될 심정의 변화도 이미 아시며(16: 20), 그들의 믿음

    에 대한 고백 속에서도 그들의 진정한 상태를 파악하시며(16: 30), 그들이 예수를

    버릴 것을 아신다(16: 32)-“온전한 지식.” 주목할 말한 것은 이 부분에서는 “진리의

    영”(성령)도 제자들을 모든 진리 가운데로 인도하며 장래의 일을 알려 줄 수 있는

    능력과 지식을 소유하신 분으로 서술함으로써 저자가 성령의 에토스도 강조하고 있

    다는 점이다.

    ⅱ) 파토스: 파토스는 청중 또는 독자의 감정에 호소함으로써 설득을 획득하려는

    방법이다.59) 에토스가 “신뢰감” 형성과 관련이 있다면 파토스는 “감동”의 형성과 관

    련이 있다고 할 수 있다. 감동이 없이는 설득도 없을 것이다. 감정을 통해서 독자의

    의지가 자극될 수 있고, 또한 그 자극된 의지를 통해서 행동이 변화할 수 있기 때

    문에 파토스도 중요한 설득 방법이 될 수 있다.

    우선 서론(13: 1)에서 화자는 고별설교의 정황을 요약하고 있는데, 여기서는 예

    수의 죽음에 대한 언급이 분명하게 제시되어 독자로 하여금 일종의 엄숙한 분위기

    를 제시한다. 또한 예수의 죽음에 관련되어 기독교인들에게 익숙한 “유월절”이란 용

    어로 죽음의 분위기는 한층 더 고조된다. 하지만 화자는 예수의 죽음에 관련된 모

    든 무거운 감정들을 단번에 불식시킨다. 예수는 이 엄숙한 죽음에 직면하여 자기사

    람을 사랑하시되 끝까지 사랑하시기 때문이다. 그의 “끝”은 어떤 부정적 용어도 아

    닌 사랑으로 대표한다. 잠시 심각해 졌던 독자는 감동되며, 그가 어떻게 끝까지 자

    기사람을 사랑하시게 되는지 귀를 기울여 들을 준비가 된다. 여기서 제자들을 “자

    기사람”이라고 표현한 것도 파토스의 형성에 있어서 의미 있는 것이다.

    59. Aristotle, The "Art" of Rhetoric, I.2.4, 17. 다른 수사학자들처럼 파토스를 단지 서

    론이나 후기에 삽입되는 감정적 호소 정도로 보지 않고 독립된 중요한 입증 형태로 부각시키는

    것은 바로 아리스토텔레스의 공헌이다.

  • - 29 -

    서론이 끝나자마자 독자는 “마귀”와 “유다” 그리고 “배신”에 대한 언급에 다시

    심각해지지만(13: 2), 화자는 그들의 음모와 상관없이 바로 예수께서 말없이 사랑을

    실천하시는 행동을 하시는 장면을 서술해 줌으로써 다시 한번 독자를 감동시킨다.

    13장 18∼20절은 구약성경 인용을 통해서 유다의 배신행위는 놀라고 걱정할만한 일

    이라기보다는 이미 예언되었던 성경의 성취에 불과함을 인식시킨다. 주님이시며 선

    생이신 예수께서 제자들의 발을 씻기신 사건 자체도 좋은 파토스의 실례로서 독자

    들은 감동된다. 이번에는 제자들을 “나의 택한 자들”이라고 표현한다. 유다가 나간

    때가 “밤”이었다는 시간설명도 파토스를 설정한다(13: 30).60)

    주제제시 부분(13: 31∼38)은 앞선 유다의 배신이 행동으로 옮겨지기 시작한 다

    음에 나오는데, 유다의 배신과 대조적으로 여기서 예수는 “영광 얻으심”에 대해서

    말씀하시며(13: 31∼32), “사랑”의 새 계명을 주신다(13: 34∼35). 하지만 뒤 이어 바

    로 베드로의 부인에 대한 예고가 뒤따른다(13: 38). 이러한 부인 예고에도 독자가

    동요되지 않을 수 있는 것은 바로 예수께서는 이미 이러한 일들을 다 아시고 아무

    런 동요 없이 말씀하시며 행동하시기 때문이다.

    입증 부분(14: 1∼16: 33)은 강한 파토스로 시작한다. “너희는 마음에 근심하지

    말라”(14: 1). 앞선 부분에서 예수의 동요하지 않는 모습, 오히려 모든 것을 아시고

    계획대로 행동하시며, 조금도 부정적인 모습을 나타내지 않고 오히려 “사랑”에 집중

    하시는 모습을 파악한 독자는 이제 하나님과 예수를 믿기만 하면 된다(14: 2). 끝까

    지 사랑하시는 예수는 끝을 넘어서도 계속 사랑하신다. 그는 자신이 떠난 후, 보혜

    사를 보내도록 하셔서 “영원토록” 제자들과 “함께 있도록” 해 주신다. 이 말씀은 강

    한 에토스이면서 동시에 강한 파토스를 형성해 주는 말씀이다. “근심하지 말라”는

    강한 부정어로 시작한 입증부분의 첫 부분은 “평안을 너희에게 끼치노니 ……”(14:

    60. Raymond E. Brown, The Gospel according to John, New Translation With

    Introduction and Commentary, (Garden City: Doubleday & Company, 1966), 579에서는 “밤”이

    라는 단어가 가진 신학적 중요성을 언급하고 있다.

  • - 30 -

    27)라는 긍정적 말씀과 함께 마무리되며, 다시 “근심도 말고 두려워하지도 말라”는

    권고로 마친다(14: 27). 이제 예수는 제자들을 “친구”라고 호칭하며, 그들은 선택된

    자임을 상기시켜 준다(15: 15∼16). 제자들은 근심하겠지만 그것은 도리어 “기쁨”이

    될 것이며(16: 20), 고통은 다시 기억되지 않을 것이며(16: 21), 그 기쁨을 빼앗을 자

    가 없을 것이다(16: 22). 강한 부정어로 시작한 이 입증 부분은 강한 긍정어로 마무

    리된다. “…… 평안을 누리게 하려 함이라 세상에서는 너희가 환난을 당하나 담대

    하라 내가 세상을 이기었노라”(16: 33)-강한 파토스. 고별강화의 본론인 입증부분은

    파토스로 가득 채워져 있다.

    결론 부분(17장)에서는 이제 어두운 감정들에 대한 언급들이 없다. 즉 “근심”,

    “두려움”, “곡하고 애통함”(16: 20) 등의 단어는 더 이상 사용되지 않는다. 화자는

    내포독자가 이미 이러한 모든 것을 이기고 담대해져 있음을 기대한다. 이제 예수의

    기도는 “영화”(榮化), “영광”, “하나됨”, “거룩”, “기쁨” 등의 긍정적인 언어로 가득

    차 있다. 부정적인 단어들을 사용하지 않은 것도 파토스이며, 긍정적인 단어들을 사

    용한 것도 파토스이다.

    ⅲ)로고스: 로고스는 인간에게 있어서 필수적인 성격인 이성에 호소하는 것을 말

    한다. 논리학에서처럼 수사학에서도 연역적인 생략삼단논법(enthymeme)과 격언

    (Maxim)이 있고 귀납적인 예증(example)이 있다. 생략삼단논법은 정확하게 정의하

    기가 쉽지 않지만 일반적으로 삼단논법(syllogism)에서 청중들이 익히 알 수 있는

    대전제를 생략한 형태로 나타나는 연역적 수사를 말한다.61) 생략삼단논법은 근본적

    으로 대전제를 청중들과 공유하고 있기 때문에 강한 설득효과를 가진다. 아리스토

    텔레스에 의하면 생략삼단논법은 “입증의 본체”이며 “가장 강력한 수사학적 입증”

    으로서 어느 연설가도 생략삼단논법이나 예증을 입증수단으로 사용하지 않고서는

    61. 생략삼단논법의 정의에 대해서는, Thomas M. Conley, "The Enthymeme in

    Perspective," Quarterly Journal of Speech 70(1984): 168-69와 Gary L. Cronkhite, "The

    Enthymeme as Deductive Rhetorical Argument," Western Speech 30(1966): 129-34f를 참조.

  • - 31 -

    설득을 할 수 없다고 했다.62) 이러한 로고스는 청중 또는 독자들에게 어떤 신념을

    형성시키며, 강화하는 데에 공헌한다.

    서론은 수사학에서 하나의 전주와 같은 효과를 갖는 부분으로서 사람들로 하여

    금 주목하고 귀를 기울이게 하는 것으로 충분하므로, 여기서는 주로 에토스가 사용

    된다. 서술 부분(13: 2∼30)에서 예수께서 베드로의 발을 씻기시려 하실 때에 베드

    로는 당황하며 어리석은 질문을 거듭하지만, 예수께서는 이성적으로 논리적으로 삼

    단논법의 형태로 설명하신다(13: 8). 서술 부분의 결론 구절에 해당하는 13장 14절,

    15절에서는 동일한 대전제가 생략된 형태의 생략삼단논법이 사용된다. 제자는 선생

    의 말과 행동을 따라야 한다는 대전제를 공유하며, 예수는 제자들의 발을 씻기신다

    (소전제). 따라서 제자들도 역시 서로 발을 씻겨야 한다(결론). 여기에 보충논리로

    13장 16절에서 “격언”(maxim)이 사용된다 : “종이 상전보다 크지 못하고 보냄을 받

    은 자가 보낸 자보다 크지 못하니”

    주제제시 부분(13: 31∼38)에서는 주로 아이러니를 사용하여 수사적 효과를 의

    도하고 있는데 이는 다음에서 다룰 것이다. 입증 부분(14: 1∼16: 33)에서 “내 아버

    지 집에 거할 곳이 많다”는 명제의 진실성을 확인시키기 위해 “대조의 토픽”을 사

    용하고 있다 - “그렇지 않으면 너희에게 일렀으리라”(14: 2).63) 예수께서 자신의 떠

    남과 성령의 오심에 대해 미리 말씀하시는 이유는 그 일이 이룰 때에 “믿게” 하기

    위해서이다.(14: 29). 이 말씀대로 예수께서 떠나시고 성령이 오셨다면 이제는 믿어

    야 한다. 여기서 예수의 떠나심과 성령의 오심은 믿음의 “표지”(sign)이다. 즉 여기

    서는 표지의 생략삼단논법이 사용되고 있다. 15장 1∼17절에서는 특히 로고스가 강

    하게 사용되고 있다. 15장 1절에서는 “내가 참 포도나무”라는 은유적 형태의 “정의

    원리”(principle of definition)를 사용하여 제자들과 자신과의 유기적 관계를 강조한

    62. Aristotle, The "Art" of Rhetoric, I.1.3, 5; I.1.11, 9; I.2.8, 19.

    63. “대조의 토픽”에 대해서는 Edward P. J. Corbett, Classical Rhetoric for the

    Modern Student(New York: University Press, 1971), 118∼19를 참조.

  • - 32 -

    다.64) 포도나무 가지가 열매를 맺으려면 당연히 포도나무에 붙어 있어야 한다는 말

    씀이 삼단논법으로 제시되고 있다(15: 4,5). 친구를 위해 목숨을 버리는 것은 사랑에

    대한 최고의 입증이라는 말씀이 윤리적 “격언”과 “정도의 토픽”에 의해 강조된다-

    “사람이 친구를 위하여 목숨을 버리면 이에서 더 큰사랑이 없나니 너희가 나의 명

    하는 대로 행하면 곧 나의 친구라”(15: 13∼14). 예수께서 명하신 대로 행하는 것은

    곧 그들이 예수의 친구라는 표지(sign)이다(15: 14). 예수가 제자들을 종이라고 하지

    않고 친구라고 하는 논리는 역시 삼단논법으로 입증된다 : 종은 주인의 일을 모른

    다(하지만 친구는 안다, 대전제); 제자들은 예수의 계시를 통해서 알고 있다(소전

    제); 따라서 제자들은 친구이다(결론). 20절에서는 “가능성”의 토픽을 사용하여 보다

    어려운 일이 가능하면 당연히 쉬운 일도 가능하다는 논리를 편다 : “사람들이 나를

    핍박 하였은즉 너희도 핍박할 터이요, 내 말을 지켰은즉 너희 말도 지킬 터이라.”

    입증부분의 나머지 부분과 기도인 결론 부분(17장)에서는 로고스가 강하게 나타나

    지 않는다.

    이상에서 요한복음 고별설교에 사용된 주요 수사방법인 에토스, 파토스, 로고스

    사용을 통해서 그러한 수사방법 사용의 의도, 기능 등을 살펴보았고, 이를 통해 일

    반적으로 알려진 요한 공동체의 정황을 조명해 보려는 시도를 하였다. 에토스는 윤

    리적(도덕적, 인격적) 수사방법으로써 말하는 자나 저자의 신뢰감 획득과 관련이 있

    는데, 주로 예수를 묘사하는데 사용되었으며, 그 외에 성령과 사랑하시는 제자에게

    사용되었다. 에토스의 기능은 간단히 말하자면, “신뢰감” 조성이라고 할 수 있다. 위

    의 셋은 모두 요한 공동체에 결정적인 역할을 하고 있는 일종의 지도자들로서 가장

    중요한 신뢰의 대상이다. 이들과 함께 배후에 있는 하나님 그리고 특히 계시의 신

    뢰할 만한 전달자로서의 내포저자에 대한 신뢰감 형성은 요한복음 전체의 신뢰성

    형성과 직결되는 중요한 문제이다. 이처럼 고별강화의 에토스는 복음서 전체에 대

    64. 정의 원리에 대해서는 Corbett, Classical Rhetoric for the Modern Man, 40-45를

    참조.

  • - 33 -

    한 신뢰감을 형성하며, 특히 예수의 대행자로서 요한 공동체를 인도하고 계신 성령

    에 대한 신뢰감을 강화하고, “사랑”과 “예수의 신적 기원”과 같은 주요 주제들과 관

    련하여 예수에 대한 신뢰감을 더해 주며, 그들 신학과 신앙을 위해 예수에 대한 참

    증거를 제시해 준 사랑하시는 제자에 대한 신뢰감을 더해 준다. 특히 고립되어 핍

    박을 받는 정황에 있던 요한 공동체에게 있어서 예수, 성령, 사랑하시는 제자에 대

    한 신뢰감 확인은 공동체의 존속에 영향을 미칠 만큼 중요한 것이었을 것이다.

    파토스는 감정적 수사방법으로서 독자를 “감동”시키는 수단이 많다. 고별설교에

    서는 주로 독자를 “위로” 또는 “격려”하는 방법으로 사용되고 있다. 고별강화 전체

    를 통해서 파토스는 다른 어떤 수사방법보다도 강한 표현으로 두드러지게 사용되고

    있다. 요한 공동체가 거부해야 할 것들인 “배반”, “부인”(否認), “근심”, “두려움”,

    “슬픔” 등은 부정적인 감정들로서 강하게 거절되며, “사랑”, “믿음”, “평안”, “기쁨”,

    “영광” 등의 긍정적 감정으로 나아간다. 고별설교에서 파토스가 가장 두드러지게 사

    용된 것은 분명히 요한 공동체에 위와 같은 부정적 감정을 줄 수 있는 심각한 위기

    가 있었을 것이다. 요한 공동체의 우선적 당면과제는 내부의 분열을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