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매장 가는 길sedo.or.kr/board/board_pds/pds_57/F102.pdf · 2005-11-14 · 경매장가는길...

16
그림감정사 박정민의 행복한 뉴욕 경 매일기를 전해주는 책 . 저자가 뉴욕의 두 경매회사 , 소더비와 크리스티에서 받은 견습 체험과 개인적으로 가장 막 막한 시절에 쓴 일기를 엮은 것이다 . 12 달로 나누어진 이 책은 현대예술의 중심지인 뉴욕에서 , 주류 미술계의 현 장 한가운데에서 저자가 겪었던 일상 사를 들려준다 . Copyright 2005 by BookCosmos. All Rights Reserved. Summarized with the Permission from Publisher. 본 도서정보는 원저작자의 인가를 얻어 ( )북코스모스에서 제작하였습니다 . 저작권법에 의하여 무단전재나무단복제 및 전송을 금하며 , 원본 도서의 출판권과 전송권은 원저작자에게 있습니다 . 경매장 가는 길 박정민 지음

Transcript of 경매장 가는 길sedo.or.kr/board/board_pds/pds_57/F102.pdf · 2005-11-14 · 경매장가는길...

그림감정사 박정민의 행복한 뉴욕 경

매일기를 전해주는 책. 저자가 뉴욕의

두 경매회사, 소더비와 크리스티에서

받은 견습 체험과 개인적으로 가장 막

막한 시절에 쓴 일기를 엮은 것이다.

12달로 나누어진 이 책은 현대예술의

중심지인 뉴욕에서, 주류 미술계의 현

장 한가운데에서 저자가 겪었던 일상

사를 들려준다.

Copyright 2005 by BookCosmos . All Rights Reserved.

Summarized with the Permission from Publisher.

본 도서정보는 원저작자의 인가를 얻어 (주)북코스모스에서 제작하였습니다.

저작권법에 의하여 무단전재나 무단복제 및 전송을 금하며,

원본 도서의 출판권과 전송권은 원저작자에게 있습니다.

경매장 가는 길

박정민 지음

경매장 가는 길

박정민 지음

아트북스 / 2005년 9월 / 3 19쪽 / 16,000원

▣ 저자 박정민

이화여자대학교 및 동 대학원 졸업. 크리스티 유럽미술, NYU 미술품 감정, 소더비 미국미술 코스에서

수학. 예술의 전당 중국문화대전 수석큐레이터를 지냈고, 삼성옥션 컬렉션 사업부에서 런칭을 담당하

고 스페셜리스트로 일했으며, 소더비, 크리스티, AXA 미술품 보험회사, 록펠러 3세 아시아 컬렉션에서

실무 트레이닝을 거쳐 현재 뉴욕에 거주하며 미술품 감정가, 큐레이터로 활동 중이다. 또한 미국 미술

품 감정협회의 준회원으로, 17세기 네덜란드 미술과 19세기 후기 인상주의 미술감정사 전문 자격증을

취득 중이다. 그리고 소더비사의 시니어 스페셜리스트이자 월간 『앤티크』 편집장인 가렛의 개인 연

구원을 겸임하고 있다. 국내에서는, 1999년부터 월간 『네이버』를 비롯한 다수의 잡지에 미술 컬럼을

연재했고, 현재 『월간조선』에 「소더비 경매장 일기」를 연재 중이다.

▣ S ho rt S umma ry

이 책은 뉴욕의 두 경매회사, 소더비와 크리스티에서 받은 저자의 견습체험과 개인적으로 가장 막막

한 시절에 쓴 일기를 모은 것이다. 12달로 나누어진 이 일기는 현대예술의 중심지인 뉴욕에서, 주류

미술계의 현장 한 가운데에서 겪었던 일상사들이다. 그러므로 이 책은 뭔가 잘 풀리지 않던 시간들,

잘 나가지 않던 시간들을 통해 뉴욕 미술시장에서 이제 막 걸음마를 배워가는 이야기를 담았다.

지금 저자는 뉴욕에서 세 가지 일을 하고 있다. 전시를 기획하는 큐레이터, 미술품 감정, 비영리기관

이나 재단의 미술품을 수집, 유지하기 위한 컬렉션 매니저가 그것이다. 이런 배역은 미술품과 사람(컬

렉터), 사람과 사람을 맺어주는 미술품 중매쟁이라 할 수 있다. 아무튼 이 책은, 저자가 만나는 주변

사람들과 일상의 동선을 가감 없이 보여주며, 뉴욕 생활과 놀라운 경매의 세계, 미술품 수집의 묘미

등을 맛깔스럽게 소개한다.

▣ 차례

시작하는 글: 「오즈의 마법사」 도로시의 빨간 루비구두와 미술품 감정

1월 경매장에서 그림에 말을 걸다

2월 여러 번 고전을 읽듯이 그림을 보라

3월 거대한 상상력과 만나다

4월 그림 한 점에 반해서 인생을 바꾸다

5월 파이프를 든 소년, 돈방석에 앉다

6월 영화배우 바브라 스트라이샌드, 알고 보니 예술품 수집가

7월 진짜와 가짜, 이렇게 구별한다

8월 알래스카에서 추억을 낚다

9월 그림 감상법은 외국어 공부와 똑같다

10월 베르메르의 그림을 사랑하다

11월 집에 미술관을 짓는 사람들

12월 타임스퀘어에서 사과가 떨어지면 새해가 온다

경매장 가는 길- 2 -

경매장 가는 길

박정민 지음

아트북스 / 2005년 9월 / 3 19쪽 / 16,000원

「오즈의 마법사」 도로시의 빨간 루비구두와 미술품 감정

유치원에 다닐 무렵, 나는 영화 「오즈의 마법사」에 나오는 빨간 구두를 그렇게도 갖고 싶었다. 오랜

세월이 지난 어느 날, 주인공이 신었던 진짜 빨간 루비 구두가 뉴욕 크리스티 경매에 출품되었다는

뉴스를 접했다. 뉴욕행을 선택한 것은 이때 이미 결정되었다. 그 무엇보다도 누군가의 추억이 가격으

로 매겨질 수 있다는 사실에 나는 매료되었다. 어떻게 가격을 매기지? 무엇을 근거로? 라는 궁금증과

함께 그 방법을 배우고 싶었다. 그리고 부푼 꿈을 안고 2002년, 조그만 트렁크 하나 달랑 들고 뉴욕에

내렸다.

뉴욕에 온지는 약 3년이 되어간다. 지난 3년여 동안 겪은 가장 큰 변화라면 모든 것을 접고 다시 기

본에서 시작한 것이다. 수업 전, 매일 새벽 6시 30분에 소더비로 출근해서 10시까지 일하고, 다 식은

수프를 싸와서 점심시간에도 일했다. 수업 후에도 저녁때까지 일했다. 그렇게 수개월을 보내니, 그제

야 겨우 내 일에 대한 개념이 어스름하게 잡혔다. 경매업은 신용을 바탕으로 하는 서비스업이지 단

순히 미술품을 팔고 사는 일이 아니라는 것을 말이다. 그리고 자료 정리와 메모를 중요하게 여기게

되고 감사 편지 쓰는 법을 터득할 수 있어서 나는 무척 행복했다.

1월 경매장에서 그림에 말을 걸다

세계의 미술품이 움직이는 곳 - 1월 2일

뒷줄 숙녀분, 3천 2백만 달러, 왼쪽 신사분, 3천 3백만 달러, 3천 4백만 달러 있으십니까? 없으시면

이 그림은 신사분께 돌아갑니다. 소더비의 노련한 경매사 빌 스탈이 칸딘스키의 그림 값을 부르는 동

안, 나는 7층 경매장의 복도를 지나 상아색 철문 쪽으로 들어섰다. 나는 철문을 지나 신원 인식기에

ID 카드를 긋고 안으로 들어갔다. 난생 처음으로 소더비 그림 창고를 접하는 순간이었다. 창고에 빼곡

히 쌓여 있던 수많은 그림과 내 손에 들려 있던, 경매 출품을 거절하는 편지들 사이에서 나는 약간의

현기증을 느껴야만 했다.

우와! 여기가 세계 미술품을 움직이는 곳이구나. 나는 탄성을 연발하며 레오나르도 다빈치부터 낙서

화가 키스 해링의 그림까지 빼곡히 들어선 그림 창고를 여기저기 살펴보았다. 어떤 인연으로 나는 이

창고 속에서 세계적인 그림들과 마주 서 있는 것일까. 누구나 자기가 사랑하는 존재와의 만남을 인연

이라는 단어로밖에 설명할 수 없는 극적인 사건이라고 믿는다. 지금 이 순간, 나는 바로 그 인연을 만

났다. 비밀스러운 꿈을 꾸고 있는 것 같은 묘한 기분, 마술 가루가 뿌려진 것 같은 그림 창고….

나는 그림을 찾은 뒤 철문을 닫았다. 그리고 4층 사무실로 내려가는 엘리베이터를 탔다. 18세기에 설

립된 경매회사 소더비, 렘브란트처럼 준비하고 피카소처럼 실행하는 이곳의 분위기를 파악하기까지

얼마나 많은 시간이 걸릴까 싶어 한숨부터 나왔다. 케이크 속에 든 송편처럼 한없는 이질감으로 매일

매일 걸어가는 이 길고 긴 터널, 배움과 적응의 끝은 어디쯤일까. 나는 과연 그림을 다음 세대에 넘겨

경매장 가는 길- 3 -

주는 일과 인연을 가진 사람일까, 아닐까.

구겐하임 미술관에서 만난 화가 제임스 로젠퀴스트 - 1월 5일

친구에게 몇 달을 조른 끝에 겨우 성사된, 팝아티스트 제임스 로젠퀴스트와의 만남. 그는 허름한 청바

지에 꾸깃꾸깃한 줄무늬 셔츠 차림으로 구겐하임 미술관 사무실에 나타났다. 로젠퀴스트는 조각으로

시작해서 간판예술가로 명성을 얻은 작가다. 뛰어난 재주를 믿기보다 부단한 연습과 우직한 노력으로

나이를 먹을수록 좋은 작품을 선보여 왔다. 그는 살아온 내력, 친구들과 작업에 대한 이야기들을 꺼내

놓았다. 특히 마릴린 먼로의 실크 스크린 이미지로 유명한 앤디 워홀에 대한 추억이 많은 듯했다. 앤

디는 가장 매력적인 예술은 사업과 연관된 것이라고 늘 말하고 다녔어. 그는 피카소를 능가하는 다작

으로 유명하지. 전화를 하면 그는 늘 작품을 생산 중이라고 이야기하곤 했지. 그러면서 워홀과 자주

가던, 다운타운에 있는 허름한 식당 허드슨 다이너의 주소를 적어주었다. 그의 표현에 따르면 그곳은

맛있는 식당도, 좋은 식당도 아닌데 왠지 발길이 가던 식당이라고 한다.

그가 직접 한 장 한 장 넘기는 슬라이드 쇼를 보며, 콩닥콩닥 뛰는 가슴을 누르는 데도 한계가 있었

다. 공사 중인 구겐하임 사무실의 기계소리가 컸던 것은 천만다행이었다. 그 덕분에 두근거리는 내 심

장소리가 들리지 않았을 테니까.

이 그림이 도대체 왜 비싼가요? - 1월 15일

나는 저 그림이 꼴도 보기 싫어! 한 직장동료는 13,000달러짜리 로젠퀴스트의 작품이 보기 싫다며,

달력으로 작품을 가려놓아 가끔씩 나를 당황스럽게 한다. 등 뒤에 걸린 작품이 그렇게도 싫어요?

너무 괴기스럽고 무서워. 그녀는 오늘도 몇 장의 달력과 색 도화지를 오려붙여, 작품을 꽁꽁 가려놓

고 일을 한다. 제발 달력 좀 걷어놓자고 하면 이 그림이 도대체 왜 좋은 거야? 비싸긴 왜 이렇게 비

싸? 하는 눈빛으로 마지못해 달력을 치운다. 하지만 다음날에는 어김없이 도화지로 붙여 만든 그림이

작품을 가리고 있다.

그녀는 한마디로 보기 싫어서 라고만 한다. 그것은 단지 취향의 문제일 뿐. 좋아하는 것과 좋아하지

않는 것을 선택하는 일, 같은 작품을 보고 서로 다른 기분을 느끼는 경우, 작품에 대한 천차만별의 평

가도 개인의 취향 문제인 것이다. 취향이란 커피를 마실 때도, 옷을 고를 때도, 자동차를 살 때도, 미

술 작품을 살 때도 중요한 선택의 기준이다. 피카소의 그림을 칭찬하고 좋아해도, 내가 봐서 맘에 안

들면 그걸로 땡인 것이다. 물론 자기가 좋아하지 않아도 미술사적으로 얼마든지 뛰어난 작품도 있고,

높이 평가받는 작가들도 있다. 하지만 그 평가는 미술사가들의 몫이지, 평범한 개인이 해야 할 일은

아니다.

경매장 이야기 - 경매장 회전판이 돌아갈 때, 꼭 알아야 할 여섯 가지 이야기

경매회사는 작품을 경매하기까지 일사불란한 움직임이 필요하고, 조직화된 일 처리로 경매를 성사시

킵니다. 그렇다면 여기에서 일하는 사람들은 어떤 사람들일까요? 경매를 진행하는 경매사 , 작품 감정

을 하는 스페셜리스트 , 도록을 기획하는 카탈로거 , 작품을 촬영하는 사진작가, 경매 일정을 계획하

는 사람, 배송 책임자, 작품의 입출고를 담당하는 사람, 도난을 예방하는 사람, 포장하는 사람, 돈을

받고 송장을 내주는 사람, 도어맨, 수집가와 거래하여 고객을 유치하는 사람, 미술관 서비스팀, 홍보담

당자, 변호사, 경영담당자 등을 들 수 있어요.

경매장 가는 길- 4 -

양대 경매사인 소더비와 크리스티, 두 경매사는 모두 영국에서 설립되었지만, 1744년 설립된 소더비의

도록 표지는 파란색인 반면, 1766년에 설립된 크리스티는 빨간색 표지로 도록을 제작합니다. 그리고

소더비가 젊고 잘 생긴 사람을 도어맨으로 쓰는 데 비해, 크리스티는 나이가 지긋한 베테랑을 고용합

니다.

고흐나 피카소 같은 유명화가들의 비싼 그림만 파나요? - 1995년 기준으로 작품의 60% 이상이

5,000달러 이하였다는 통계가 있거든요. 2005년 2월, 소더비에서 이루어진 케네디 대통령의 130년 된

흔들의자의 추정가격은 4,000달러라고 쓰여 있군요. 결국은 80,000달러에 팔렸습니다. 경매회사는 이처

럼 유명화가들의 작품 말고도 역사적으로 가치가 있거나 의미가 있다고 판단되는 예술품과 수집품을

취급하는 곳입니다. 주위를 한번 둘러보세요. 집에서 눈길 한번 주지 않았던 항아리, 도자기 등이 이

미 알라딘의 요술램프로 둔갑했을지도 모를 일이니까요.

작품은 어떤 과정을 거쳐 주인을 만날까요? - 한 작가의 작품은 인기도나 작품성, 희귀성에 따라

보통 A, B, C급으로 나누게 됩니다. 피카소의 B급 그림을 소유하고 있던 K씨가 경매를 의뢰하는 편지

를 보내왔습니다. 먼저 스페셜리스트가 작품의 진위 여부와 출품할 만한 가치가 있는지 검토한 후, 서

로 계약서에 서명을 하고 경매스케줄을 잡게 됩니다. K씨는 도록 비용 및 창고 사용 비용을 부담하고

보험을 드는데, 경매회사가 제공하는 보험 서비스를 받거나 개별적으로 가입할 수 있습니다. K씨와 경

매회사 사이엔 둘만 아는 약속(얼마 이상이 아니면 팔지 않는다는 가격 하한선)이 있어요. 합의 된 가

격은 일급비밀입니다.

그 후 스페셜리스트는 유력한 구매고객에게 전화를 합니다. 그리고 도록 만드는 사람들은 사진을 찍

고, 디자인을 합니다. 이때 도록에는 피카소 그림의 설명과 추정가격이 표시됩니다. 경매가 열리기 7

일 전에 전시가 열리게 됩니다. 구매후보자들은 스페셜리스트와 함께 그림의 앞, 뒤, 옆을 요모조모

따져서 상태를 확인한 후 얼마를 써야 자기 것이 될 수 있는지 넌지시 묻기도 합니다. 구매후보자는

경매장에 오지 않고 전화로 사거나, 미리 얼마까지 쓰겠다고 종이를 넘겨주기도 합니다. 반대로 경매

에 직접 참가하고자 한다면 경매 당일 30분 전, 번호가 적힌 패들을 손에 쥐고 있다가 회전판에서 피

카소의 그림이 나오면 경쟁자보다 높은 가격으로 패들을 번쩍 들면 됩니다.

이 과정에서 경매사의 빠른 진행과 판단력, 유머, 적절한 질투심 유발, 그리고 순발력이 무엇보다 중

요하지요. 경매사가 망치를 친 후 L씨, 당신 것입니다 란 말을 해주고 나면, L씨는 가격과 수수료를

지불하고 픽업 데스크(고객이 그림을 찾는 곳)에서 그림을 찾아가면 됩니다. 마지막으로 K씨는 자신의

그림이 팔렸다는 전화를 받고 위탁수수료와 실비를 제외한 금액을 정산하게 되지요. 경매과정은 대략

이렇습니다.

소더비와 크리스티의 경매장은 어디에 있나요? - 경매장과 지사 사무실은 다른 개념이에요. 진짜

경매가 이루어지는 곳을 경매장이라고 하는데, 경매회사에 소속된 지사 사무실은 출품 상담 내지는

고객 지원업무만을 전담하고 있습니다. 뉴욕, 홍콩, 런던, 텔아비브, 취리히, 밀라노, 암스테르담, 멜버

른, 제네바, 로마, 로스앤젤레스, 상하이 등에 경매장이 있습니다.

외국에서 경매가 인기 있는 이유 - 외국에서 경매는 하나의 문화입니다. 경매시장은 3D', 즉 재산분

배, 이혼, 사망의 세 가지 요인 때문에 활기를 띱니다. 가끔 경매에 관한 영화 같은 이야깃거리들이

경매장 가는 길- 5 -

회자되는 이유도 이 3D'에 의해 유통되는 성격 때문입니다.

경매장에 들어갈 때 입장료를 내야 하나요? - 두 회사의 경매는 충분한 준비기간을 가진다는 것이

장점입니다. 인기 경매 중의 하나인 〈인상주의(1860~1915)와 근대미술(1915~1960) 경매〉 및 〈현대

미술(1960~1985) 경매〉는 매년 뉴욕에서 5월과 11월, 두 차례에 걸쳐 대대적으로 열립니다. 이 두 경

매도 오전, 오후, 저녁 경매로 나뉘어 진행되는데, 티켓은 저녁 경매에만 필요합니다. 물론 티켓은 무

료지만, 반드시 각 경매회사 고객 서비스센터에 전화를 걸어 우편으로 보내달라고 요청해야 합니다.

나머지 경매는 입장료는 물론 티켓도 필요 없습니다. 경매장 문턱은 일반인이 상상하는 것보다 매우

낮습니다. 뉴욕의 겨울, 뭐 특별한 것이 없을까?

2월 여러 번 고전을 읽듯이 그림을 보라

작품을 수집하는 사람들의 화장실 - 2월 2일

뉴욕에서 예술품 수집가의 집을 방문할 때마다 나는 화장실 사진을 찍어오는 버릇이 생겼다. 화장실

이 온갖 개인의 취향과 성격이 버무려진 곳이라는 점은 매우 흥미롭다. 화장실의 인테리어, 비누, 샴

푸, 수건, 수건을 접는 방법, 걸린 그림, 두루마리 화장지가 걸린 방식들이 집주인에 대한 진짜 이야

기를 들려준다. 화장실은 남(다음 사람)을 위한 배려라는 덕목을 요구한다. 이런저런 이유로 나는 그

사람의 진면목에 대해서 가장 잘 알 수 있는 무언가가 화장실에 숨어 있다고 생각하게 되었다.

인상적이었던 뉴욕 아파트의 화장실이 몇 군데 있었다. 노턴 바이러스를 개발한 피터 노턴이 사는 아

파트에는 그의 직업을 반영하듯 노트북 컴퓨터를 이용한 비디오아트 작품을 화장실마다 배치해 놓아

인상적이었다. 그밖에도 변기 커버로 만든 벽걸이 작품을 걸어놓은 곳, 뉴욕에서 먼저 인정받은 한국

인 설치작가 서도호 씨의 천으로 만든 작품이 있던 파우더 룸, 화장실을 주제로 한 사진작품을 걸어

놓은 벽, 영국 작가 데미언 허스트의 약국 작품이 있던 수납장, 거울에 걸린 요시모토 나라의 설치작

품과 세면대에 놓인 재떨이 작품 「죽기엔 너무 젊다」 등이 그러하다. 아무튼 뉴욕의 수집가들은 화

장실도 예술품이 함께하는 곳으로 여긴다. 우리로서는 상상도 못할 일이지만 말이다. 그들에게 화장실

은 더 이상 숨기고 싶은 장소가 아닌 것이다. 음, 바람직한 일이다.

하루가 일년 같은 첫 출근 - 2월 28일

눈이 채 녹지 않은 쌀쌀한 날씨다. 한숨도 못자고 퀭한 눈으로 새벽 6시에 집을 나섰다. 회사로 가는

지하철 속에서 몇 번이나 집으로 돌아가고 싶었다. 걱정과 한숨을 지그시 누르며, 사무실 문을 두드렸

다. 문을 열어준 사람은 소더비 아메리카나의 부장 레슬리키노였다. 반갑게 맞으며 코트를 걸어주고

책상도 닦아주는 그를 보니 왠지 모를 자신감이 생겼다. 부서 사람들과 인사를 하고, 명함을 교환했

다. 무엇보다도 이름을 외워야 하는 것이 첫 번째 일이었다. 잘 모르는 발음은 다시 한 번 물어본 후

내 커닝수첩에 한글 발음대로 적어놓았다. 그 옆에는 그들이 앉은 책상의 위치를 그림으로 그려 넣

었다.

오늘 한 일은 출품거절 편지를 쓰는 일이었다. 그러면서 미국이 넓다는 것과, 짧은 역사를 보상하기라

도 하듯 오래된 것들에 대한 애정이 크다는 것을 실감했다. 전화벨이 울리는 게 무서운 하루였지만,

사람들이 친절하고 상냥해서 그나마 천만다행이었다. 휴, 하루가 일 년 같았다. 첫날은 이렇게 갔다.

그나저나, 내일의 태양을 못 떠오르게 할 방법은 없을까?

경매장 가는 길- 6 -

3월 거대한 상상력과 만나다

현대미술의 집결지, 아모리 쇼 - 3월 9일

세찬 바람에 아침부터 창문이 소란스럽다. 회사 동료들과 아모리 쇼에 가기로 한 날이다. 늦게 오는

친구를 기다리며, 카페에 들어갔는데 『뉴욕 타임스』가 눈에 띄었다. 월 스트리트에서 일하는 젊은

신흥부자들의 미술품 수집 열풍이란 종합 1면 기사가 눈에 들어왔다. 이런 뉴스를 1면에서 다루는

건, 재력가들의 미술작품 구입이 국가적인 측면에서도 중요한 일이라는 인식이 자리 잡았기 때문이다.

20세기 초인 1929년, 미국의 저명한 재력가의 부인들이자 수집가들로서 뉴욕 현대미술관을 만든 세

여인, 즉 애비 록펠러, 메리 퀸 설리번, 릴리 브리스. 이들은 그 당시 큐레이터였던 알프레드 바의 조

언에 따라 피카소, 모딜리아니, 모네, 드가, 키리코, 브라크 같은 유럽 근대미술의 핵심작가들의 작품

을 사 모으며 뉴욕 현대미술관의 초석을 다져놓았다. 당시, 뉴욕 현대미술관의 건립에 결정적인 도화

선으로 작용한 행사가 있었으니, 그것이 바로 오늘 열리는 아모리 쇼이다. 아모리 쇼는 당시 유럽에서

유행하던 최신의 미술작품을 전시했는데, 대표작으로 마르셀 뒤샹이 그린 「계단을 내려오는 누드」

를 들 수 있다. 출품 작가는 뒤샹 외에도 세잔, 반 고흐 등의 19세기 화가를 비롯하여 마티스, 피카소,

칸딘스키 등이었다.

아모리 쇼는 관례적으로 뉴욕 현대미술관의 후원으로 열린다. 올해는 이탈리아 커피회사 일리가 주요

협찬사로 후원했다. 한편 현대미술 전시회는 점점 화려해지는 경향이 있다. 경쟁이라도 하듯이 각 부

스에 진열된 멋진 디자인의 가구들, 첨단 평면 컴퓨터들은 인테리어 쇼 못지않게 세련미를 뽐낸다. 동

시대 미술을 직접 느낄 수 있고 미래의 유명작가를 예상해보고, 갤러리 주인과 수집가가 나누는 대화

에 귀 기울이는 등은 갤러리나 경매장에서 맛볼 수 없는 아트페어만의 즐거운 체험이다.

뭔가 수집하는 사람들을 만나는 동안 - 3월 25일

여행할 때마다 냉장고 자석을 모으는 것이 쏠쏠한 재미다. 자석을 모으기 시작한 후 무언가를 모으는

사람들을 만나 친구로 삼았다. 또 인연이 닿아 배움을 얻고, 상처를 주고받는 동안 한결같이 내 곁을

지켜준 이들의 사진을 냉장고에 붙여놓았다. 사실 다 붙이려면 초대형 냉장고와 수많은 자석이 필요

할 만큼, 나는 알게 모르게 많은 사람들의 도움을 받으며 살아간다. 냉장고 문을 여닫을 때마다 안부

를 묻고 싶은 보석 같은 사람들… 사람은 저 잘난 맛에 산다지만, 사실은 잘난 남들에게서 반사되는

광채를 쬐며 살아가는 것 같다.

숨은 보물찾기 - 3월 27일

오전에 장갑을 끼고 경매도록을 1912년부터 순서대로 배열했다. 허드렛일이었지만 숨겨진 보물이라도

찾는 양 기분이 들떴다. 점심시간 후, 수북이 쌓여 있던 출품의뢰 편지를 일일이 열어보고 답장을 썼

다. 편지에는 어떤 사유로 현재의 소장품을 갖게 되었는지, 얼마에 샀는지 등의 이야기가 담겨 있었

다. 상속, 벼룩시장이나 집안 창고에서 찾아낸 것, 경매회사에서 구입한 것 등 소유 경로는 다양했다.

경매를 의뢰할 때는 물품의 사진을 잘 찍어야 한다. 의자를 예로 들면 최대한 모든 방향에서 찍을 필

요가 있다. 서명이나 상표가 있다면 플래시를 쓰지 않은 상태에서 초점을 맞춰 자세히 찍어야 한다.

스페셜리스트는 이런 사진을 1차로 점검한 후, 분류하게 된다. 경매에 부적합하여 NSV(No Sale

경매장 가는 길- 7 -

Value)"로 불리는 물품은 답장과 함께 사진을 되돌려 주어야 한다. 이는 가짜이거나 가치가 없다고 판

단되는 경우, 또 가격이 너무 낮아 수수료의 사업성이 없는 경우이다. 그래도 편지에는 우회적으로 거

절 이유를 표현한다.

그리고 가치가 있다고 판단되는 출품 후보 파일은 내부에서 다시 심사를 거친다. 그런 후 필요에 따

라 소장품을 들고 직접 방문해줄 것을 요청하고, 양이 많거나 이동하기 어려울 경우 스페셜리스트들

이 직접 출장방문을 한다. 개인 외에도 회사나 미술관, 갤러리, 가족, 비영리단체들이 소장품에 대해

전체 감정을 의뢰하는 경우는 매우 흥미롭다. 왜냐하면 남의 창고 속에 무엇이 있는지를 알아볼 수

있으니까 말이다. 하지만, 그곳에서 본 물품에 대해서는 비밀로 해야 한다. 고객의 동의 없이 고객의

정보를 절대 유출할 수 없다는 원칙을 지키는 것이 일을 잘 하는 것보다 더 중요하다.

4월 그림 한 점에 반해서 인생을 바꾸다

나는 속상한데 엄마는 행복하단다 - 4월 5일

뉴욕으로 온 엄마는 손목이 아픈데도, 무슨 일을 해줄 게 없나 싶어 두리번거린다. 그리고 기어이 일

거리를 찾아내곤 한다. 피곤할 텐데도 쉬지 않고 일하는 엄마 때문에 나는 또 속상했다. 그러나 엄마

는 아무 것도 못해주면 속상하다고 한다. 엄마의 이런 모습을 보면, 가슴이 아리다. 이젠 내가 엄마를

보살펴 주어야 할 나이. 나는 막연하게 엄마의 노랫소리처럼 살고 싶었다. 내가 어릴 때부터 엄마는

「대니 보이」나 샹송 같은 노래를 많이 불러주셨다. 나는 지금도 그때의 엄마 모습이 또렷하다. 그

노래들처럼 나에게 베풀어 주셨던 자연스럽고, 따뜻한 사랑 또한 이젠 조금씩이나마 돌려드려야 할

나이.

옛날식으로 일하는 소더비 사람들 - 4월 7일

5월 경매를 위해 경매도록 만드는 일을 배웠다. 도록은 사진과 가격, 설명으로 구성되는데, 경매가 열

리기 전에 작품에 대한 이해를 돕고 효과적인 판매를 위해 제작된다. 마치 옛날 대장장이들이 기술을

배울 때처럼 이 일은 졸졸졸 따라다니며 익혀야 한다. 앤드류와 부장 레슬리는 나를 전시장에 데려가

그 자리에서 가구를 분해하며 감정의 노하우를 가르쳐주었다. 그들은 최첨단의 방법을 동원하지 않았

다. 컴퓨터로 관리하지 않고, 서랍장 안에 문서와 사진, 편지로 분류하였으며, 상당 부분 스페셜리스트

들의 기억력과 인맥에 의존하였다. 그 점이 내게 가장 인상적이었다. 그 엄청난 기억력에 나는 종종

놀라곤 했다. 하지만 그들은 매우 과학적으로 정리해 나갔다. 자료를 철저히 보관하고 성실한 자세로

일하는 모습에는 전통을 이어가는 장인정신이 짙게 배어 있었다. 전통을 지키는 것은 아름답다.

그림 한 점 때문에 인생을 바꾼 남자 - 4월 10일

예순 살이 넘은 화가인 프랭클린은 학교에서 만나 친구가 되었다. 이 친구는 내과의사로 일했으며, 변

호사로도 일했다. 그러던 그가 얼마 전, 내게 첫 개인전의 초대장 엽서를 불쑥 내밀었다. 누가 알아?

내가 유명한 작가가 될지 말이야. 사람 일은 아무도 모른다고. 답례로, 집 근처 식당에서 그에게 식사

를 대접하며, 그림 그리는 일은 취미삼아 할 수 있는데, 왜 안정적인 직업을 접고 직업화가가 되었는

지를 물었다. 그의 말에 의하면 어느 날 퇴근하던 중, 병원 복도에 걸려 있던 앙리 마티스의 「금붕어

와 조각」(1911)에서, 고달픈 일과를 마치고 세상에서 가장 편한 자세로 쉴 수 있는 푹신한 안락의자

같은 느낌을 받았다고 한다. 그는 마티스의 그 그림이 자신을 욕망의 섬 맨해튼으로 불러들인 것 같

다며, 행복한 미소를 지어보였다. 브루클린의 정신분석학자 데오도르 루빈의 말처럼, 꿈을 갖고 배우

경매장 가는 길- 8 -

며 변화를 도모하기에 늦은 시간이란 없다.

5월 파이프를 든 소년, 돈방석에 앉다

선물 - 5월 2일

엄마 아빠가 뉴욕에 오셨다. 백화점에 모시고 가서 처음으로 양복과 정장을 사드렸다. 네가 돈이 어

디 있냐 며 극구 말리셨지만, 탈의실에서 옷을 입고 계시는 동안 그렇게 좋을 수가 없었다. 부모님은

나에게 최초의 미술 선생님이셨다. 유치원에 들어가기 전부터 세계 미술명화전집을 책장에 꽂아주신

부모님이 지금 내 길의 토양을 마련해 주셨다. 나이가 들면서 좋아하는 그림도 바뀌는 모양이다. 꼭

화가가 아니더라도 나는 미술로 사랑을 표현하고, 그 사랑을 표현하는 방법을 부모님에게서 배웠다.

미술도, 인생도, 사랑도 다 한 곳에서 출발한 것과 다름없다.

세계에서 가장 비싼 그림이 탄생하던 날 - 5월 5일

2004년 5월 5일, 뉴욕 맨해튼 72번지 소더비 경매장 7층, 저녁 7시, 경매사 토비어스 메이어가 경매

번호 7번을 외치는 순간 피카소의 「파이프를 든 소년」(1905)이 경매장 회전판에 나타났다. 술렁거리

는 장내 분위기에 이어, 7명의 입찰자들이 경쟁을 시작, 엎치락뒤치락하며 치솟는 숫자싸움과 더불어

경매가격은 점점 높아졌다. 이날 메이어는 7명의 경쟁자 모두에게 평소보다 3배 이상의 많은 시간을

주었다. 충분한 시간을 배려했고 기다리는 인내심을 발휘한 것이다.

마지막 순간, 계속 휴대폰으로 통화를 하고 있던 소더비의 워런 웨이트먼 회장이 메이어에게 작은 수

신호를 보냈다. 그러자 메이어가 왼손에 쥐고 있던 마호가니 나무망치를 내려치며 말했다. 9천 3백만

달러(수수료 포함 1억 416만 8천 달러), 패들 넘버 255번, 축하드립니다. 소더비는 이 그림을 소유하게

된 전화 속의 고객에 대해서는 어떤 힌트도 주지 않겠다고 했다. 전화를 통해 대리인이 되어주었던

웨이트먼 회장에게 고객의 소개를 요청했을 때도 재미있었어요. 생동감이 넘치는 고객이었죠. 라는

짧은 대답이 전부였다.

이 그림이 팔리자마자 장내에 울려 퍼지던 박수는 마에스트로에게 보낼 법한 공손한 갈채에 가까웠

다. 관중들의 박수를 뒤로 한 채 회전판 뒤 작품창고로 돌아간 그림은 지하 1층 픽업 데스크로 운반

되었다. 그리고 특별 포장부서로 옮겨져서, 자동차로 전달되었다. 베일에 싸인 낙찰자에게 그림이 전

해지는 순간, 이 그림은 새로운 소유자와 여행을 시작하게 된다.

피카소의 「파이프를 든 소년」 은 뉴욕 『해럴드 트리뷴』의 발행인인 존 헤이 휘트니 씨 부부의

그린트리 재단 소장품이었다. 휘트니 부부는 이 그림을 1950년에 3만 달러를 주고 구입했다. 이 작품

은 완벽한 테크닉을 구사하고 에너지가 가득 넘치며, 절제할 때와 발산할 때를 정확히 파악해 잘 정

돈된 느낌을 준다. 입찰에 나선 7명의 경쟁자들은 왜 이 그림에 집착한 것일까? 1905년에 제작된 피

카소의 작품이 몇 점 없다는 것도 가격이 높아진 이유 중의 하나다. 1996년에 뉴욕 현대미술관에서

딱 한 번 전시되었으며, 미술시장에서 거래된 적이 없는 작품이라는 희소성, 따라서 작품 상태가 완벽

하다는 점, 그리고 안목 있기로 명성이 자자한 휘트니 부부의 소장품이라는 점 등이 이 작품이 세상

에서 가장 비쌀 수밖에 없는 이유라고 할 수 있다. 어쨌거나, 내일 신문과 뉴스는 온통 수줍어하는 표

정의 이 소년으로 도배되겠지.

경매장 가는 길- 9 -

6월 영화배우 바브라 스트라이샌드, 알고 보니 예술품 수집가

8 p.m. 크리스티 보석부서 사무실 - 6월 1일

영화배우 바브라 스트라이샌드. 그녀의 표현을 빌자면 철들기 전부터 아름다운 것을 모으는 본능에

이끌려 살아왔다고 한다. 어느 날, 18세기 가구 딜러 리 키노의 사무실 문을 밀며 들어서던 순간, 안

쪽에서 나오던 스트라이샌드와 정면으로 부딪힌 일이 있었다. 그녀가 떠난 뒤, 리는 내일 이마에 혹이

생길 테니 회사에 가지 말라고 놀려대면서, 스트라이샌드는 작은 앤티크나 보석 등을 구입해도 증명

서와 전시기록 등을 통해 체계적으로 정리해 놓는 모범적인 수집가라고 이야기해 주었다.

그 후 2주 뒤 오전 무렵, 크리스티 보석부서에서 스트라이샌드의 전화를 받았다. 사고 싶은 보석의 사

양보고서 6장을 팩스로 보내달라고 하는 요청이었다. 약간 들뜬 기분에 오전 내내 실수연발이었다. 스

트라이샌드에게 보고서를 팩스로 보낸 후, 크리스티 경매회사에서 지난 수십 년 동안 판매한 보석의

기록이 담긴 스크랩북을 책상 위에 모두 가져다 놓았다. 보석과 시계를 배우고 싶어 크리스티로 옮긴

후, 첫 번째로 맡은 리서치 프로젝트였다. 그것은 디자이너별로 여태까지 가장 비싸게 팔린 보석의

베스트 10 을 조사해보는 일이었다. 여배우만의 전유물 같은 보석, 보석에 얽힌 유명 인사들의 사랑이

야기와 이별이야기, 나름대로 숫자와 소유자를 짝짓기하면서 나는 19세기부터 20세기까지의 보석을

매개로 시간여행에 빠졌다. 밤이 깊어간다.

굿모닝! 크리스티의 도어맨 - 6월 9일

출근 전에, 카페 딘 앤드 델루카에 여유롭게 앉아서 커피 한 잔 시켜놓고 신문을 보는 것이 내 작은

꿈이다. 그러나 현실은 꿈과 반대여서 공연히 마음만 바쁘다. 얼른 커피를 봉투에 담아 사무실로 향했

다. 크리스티의 현관문을 열어주는 도어맨 질이 굿모닝! 하고 아침 인사를 건넨다. 나도 인사를 한다.

그의 목소리를 들으면 의욕이 생긴다. 그래, 오늘 한 번 멋지게 살아보는 거야. 자신의 일을 아끼고

늘 신나게 일하는 그는 늘 나 자신을 돌아보게 한다. 자신은 밖에서 일하기 때문에 햇볕도 많이 쬘

수 있어서 더 건강하다고 자랑하곤 한다. 그런 그는 한 번도 찡그린 얼굴을 보여준 적이 없다. 주변까

지 다 행복하게 해주는 밝은 에너지를 발산한다는 것, 그것은 어떤 보석보다도 더 빛난다.

뉴욕의 6월과 함께 한다는 것 - 6월 13일

6월의 뉴욕은 이맘때의 장미만큼이나 풍요롭다. 축제가 꽃을 피우는 이때, 링컨센터 앞마당에서 열리

는 한여름 밤의 스윙 댄스 축제에는 드레스나 청바지 아무거나 입고 가서 매일 밤 다른 테마 스윙,

탱고, 차차차, 블루스 등을 배운 후 그 자리에서 춰볼 수도 있다. 또 모스틀리 모차르트에 가면 4주

내내 모차르트 음악을 골라 들을 수 있고, 센트럴 파크에 메트로폴리탄 오페라단이 나오면 도시락을

까먹으며 감상할 수도 있다.

그뿐이 아니다. 크고 작은 공연장에서 열리는 JVC 재즈 축제를 즐길 수 있고, 브라이언 파크 잔디밭

의 야외극장에서 올리비아 핫세가 출연하는 「로미오와 줄리엣」을 볼 수도 있다. 또 셰익스피어 축

제의 연극을 공짜로 본 후, 길거리 트럭에서 1달러짜리 소프트 아이스크림을 사 먹으며 집으로 돌아

올 수 있다. 매년 6월에 벌어지는 링컨센터 축제는 뉴욕에서 빼놓을 수 없는 즐거움이다.

경매장 가는 길- 10 -

7월 진짜와 가짜, 이렇게 구별한다

가짜 같은 진짜 고양이 르 로이 - 7월 1일

동료 캐서린의 고양이 르 로이는 가짜(인형)처럼 보인다. 울기 전에는 진짜 고양이인지 인형인지 구

분하기 어렵다. 진품 예술품을 구별하는 방법은 없을까. 위조품을 구별하는 안목을 키우려면 우선 작

품을 가까이서 봐야 해요. 의뢰가 들어오는 그림들 중에 가짜 작품만 약 40%를 차지해요. 어떻게 아

느냐고요? 일단 보는 눈과 관련 지식이 필요한데, 많은 경험을 통해 안목을 키우는 것이 최고입니

다. 메트로폴리탄의 복원 전문가 토머스 하빙은 이렇게 말한다. 가짜라고 다 나쁜 것은 아니다. 역설

적으로 (진짜 그림과 흡사하게 모사한) 좋은 가짜 작품은 진위여부에 대한 연구 조사에서 중요한 공

헌을 하게 된다.

뉴욕 시립도서관에 앉아 화가별로 작품에 서명하는 법을 컴퓨터로 분석한 책을 공부한 지도 어언 3시

간째. 진위감정을 위한 공부의 일환으로 화가별 서명을 머릿속에 차곡차곡 정리하는 것은 필수란다.

필체는 그림을 그리는 스타일에 버금가는 작가의 특성으로 작용한다. 그림의 중간에 이름의 대표 이

니셜만 쓰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주로 왼쪽 아래에 날짜와 이름을 같이 쓰는 사람이 있다. 서명이 하

나씩만 있으면 외우기도 쉬우련만, 10개가 넘는 화가도 있으니, 왜 그렇게 많은 사인을 했을까? 아,

이 많은 서명, 언제 다 외우고, 과연 얼마나 오랫동안 기억할 수 있을까? 밖에는, 계절의 사인처럼 비

가 내리고 있다.

돼지 목에 진주목걸이 - 7월 19일

보석 딜러들이 감정하는 방에는 보석지지대가 수북이 쌓여 있다. 이제 보석지지대를 구별하여 우아하

게 전시하는 일쯤은 베테랑 수준이다. 매일매일 수백 개의 보석을 보며 일하는 것도 신기하지만, 작은

보석이 실수로 쓰레기통 속에라도 들어갈까 봐 늘 조심조심한다. 보석을 선호하는 사람들은 그림을

선호하는 사람들과 뭔가 다른 분위기가 있다. 옷 입는 취향이 일단 다르다. 전체적인 인상으로 그림을

보는 사람들은 멀리서 숲을 보고 싶어 하고, 보석을 보는 사람들은 나무 밑동에 핀 꽃을 가까이서 보

길 원한다. 보석에는 문외한인데다가 일상생활에도 작은 진주목걸이 한 개면 만사 OK였던 탓에, 난

엄청난 보석들을 봐도 아, 예쁘다 정도의 감동뿐이다. 돼지 목에 진주목걸이란 나 같은 사람을 두

고 하는 말인지도 모른다.

진위여부를 판가름하는 기술적인 방법

전문가들이 그림 복원이나 수리를 하기 전에, 불을 끈 방에서 블랙라이트라 불리는 자외선을 그림에

가까이 대고 켜면 여태까지 모든 수리 기록이 나타납니다. 사인도 떠다니고, 작은 점이나 큰 얼룩, 물

감 흘린 자국까지 세세하게 볼 수 있습니다. 우리가 눈으로 보고 있는 그림 안쪽에 완전히 다른 그림

이 그려진 경우도 있습니다. 블랙라이트를 비췄을 때, 파란 빛이 나는 하얀 점이 보인다면 그것은 캔

버스 천을 덧붙이거나 안감을 다시 댄 경우입니다. 어두운 남보라색은 퍼티라는 접착제를 발라서 수

리한 흔적이지요. 또 미세하게 작은 파란 점은 먼지를 인식하는 것입니다. 흐릿한 아지랑이 같기도 하

고 옅은 연기 같기도 한 연두색이 보인다면 그것은 오래된 광택제(니스, 바니시)입니다. 그런데 이것은

반드시 확인해야 하는 중요한 흔적입니다. 이 표시가 있다면 최근에 복원 및 수리 작업이 없었다는

뜻이거든요. 따라서 그림의 상태가 양호하다는 거죠.

중요한 것 중의 하나는, 유화는 반드시 유화물감으로, 아크릴화는 아크릴물감으로 수리하는 것이 좋다

경매장 가는 길- 11 -

는 것입니다. 그런데 복원할 때 재료를 섞어서 쓰는 경우가 많습니다. 복원한 그림이라면 어떤 재료로

복원했는지도 반드시 확인해야 합니다. 아크릴물감과 유화물감을 블랙라이트만으로 구분하기는 어렵

습니다. 효과는 비슷하나 성격이 근본적으로 다른 이 둘을 구별하기 위해선 다른 화학적인 검사가 필

요하지요.

수채물감과 구아슈, 이 두 가지는 명확하게 구별되는데, 그것은 창백한 파란색부터 어두운 보라색, 오

렌지색 등의 다양한 색으로 나타나기 때문입니다. 그렇다고 블랙라이트가 만능 거짓말 탐지기는 아닙

니다. 수채물감과 구아슈를 검사할 때 블랙라이트를 교묘히 피하는 주범으로는 색깔을 바꾸는 광택제

를 들 수 있습니다. 이것은 복원 및 수리 사실을 감쪽같이 감춰줍니다. 이는 자외선을 흡수하는 기능

이 이 광택제에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그림의 표면이 번들거리고 윤기가 심하게 나는 것이 특징입

니다. 이 광택제의 사용 여부를 알 수 있는 방법은 색깔의 농도와 전체적으로 겹겹이 덧발라놓은 광

택제의 층을 비교하는 것입니다. 고객이 그림을 사기 전에 갤러리나 화상, 경매회사는 이런 사항들을

비롯해 그림에 관한 완벽한 지식을 고객에게 제공해 주어야 합니다.

8월 알래스카에서 추억을 낚다

한 순간의 물거품 - 8월 2일

넉 점의 유화를 적당한 위치에 다시 걸었다. 사람이 산다는 것도, 그렇게 자기가 있고 싶은 자리에 자

신을 놓아두는 것이란 생각이 들었다. 오늘 오후 슈퍼마켓에서 물건을 사오는 길에, 1년 남짓 사용하

던 팜파일럿 안의 모든 내용이 사라져버린 것을 알았다. 그 속에 담아둔 전화번호도, 낙서도, 영어단

어도, 그동안 썼던 글도 이유 없이 날아가 버렸다. 기계에 의존했다가 이런 일을 당하고 보니 기억력

의 공백이 한심스러웠다. 이렇게 잘못한 것이 없는데, 모든 게 한순간에 날아갈 수도 있었다. 그게 인

생이려니 싶었다. 마음을 비우자. 유화를 보며 쓰린 마음을 달래본다.

알래스카에서 맛 본 싱싱한 추억 - 8월 3일

빙하가 녹아 있는 알래스카의 강. 강에서 연어낚시를 끝내고 연이어 바다로 넙치낚시를 나섰다. 역시

바다도 강처럼 맑고 깨끗했다. 얼마 지나지 않았는데 어린 상어를 다섯 마리나 잡았다. 배의 선장에게

조스를 잡았다니까요! 하고 자랑했더니 반응이 시큰둥했다. 알고 보니 상어는 낚시꾼에게 재수 없는

물고기란다. 또 하나, 바다낚시를 하러 갈 때는 절대로 바나나를 싸 가면 안 된다. 바나나도 재수가

없는 징조라고 한다. 낚시를 끝낸 뒤 개썰매를 타고 여름의 눈 산을 신나게 달렸다. 그리고 돌아와서

는 연어랑 왕게를 먹으러 갔다. 아아, 정말 8명이 먹다가 7명이 죽어도 모를 맛이었다. 저녁식사 후,

바다로 카약을 하러 갔다. 바다에서 빙하를 원 없이 구경했다. 숙소로 돌아오면서 나는 간절히 바랐

다. 백야현상으로 밤 11시에도 해가 지지 않던 이곳의 아름다운 기억이 단 천일 동안만이라도 뇌리

속에 싱싱하게 살아 있기를, 꼭 다시 올 수 있기를….

9월 그림 감상법은 외국어 공부와 똑같다

사촌이 낙찰되면 배가 아프다? - 9월 23일

신문이나 잡지에서 특정 화가의 특정 그림이 마치 올림픽에서 수립한 신기록처럼 경매에서 얼마에 팔

렸다느니 하는 뉴스를 자주 접한다. 그런데 이런 보도 방식은, 1970년대 말부터 수요에 비해 공급이

경매장 가는 길- 12 -

절대 부족한 예술작품을 두고 경쟁을 부추기기 위해 경매회사들이 부린 고도의 전략이었다. 그들은

광택이 번드르르한 고급 종이에 잘 찍은 사진들을 앉혀서 도록을 만들고, 드라마틱하게 홍보하는 방

법으로 가격을 높여 갔다. 또한 스페셜리스트들이 고객에게 전화를 할 때, 누구는 어떤 화가의 어떤

작품을 갖고 있다던데… 하는 식으로 상대방의 경쟁심을 자극하곤 한다. 그러나 그러한 치열한 경쟁

이 순수하게 예술품을 사랑하는, 순도 100%의 마음에서 비롯된 것으로 보이지 않는다. 사교문화에 뒤

처지지 않으려는 욕구와 지위 유지, 신분 상승의 명분도 수집의 큰 부분을 차지한다. 공통된 취미를

나누면서 자연스레 사업 이야기로 이어갈 수 있는 점, 한층 더 발전된 비즈니스, 예술품을 매개로 한

인맥, 리더십의 확대, 사회적인 영향력 행사도 그림 수집에 열을 올리는 이유다.

그러나 기부에 적극적인 미국인들은 올해 돈을 더 많이 벌어 좋은 그림을 구입하고, 남들보다 더 많

이 미술관에 기부하겠다는 선의의 경쟁을 벌이는 경우도 많다. 미술관에 작품을 기부하면서 사회에

부를 환원하고, 공통된 취향을 가지고 있다는 유대감이 생기면서 자연스럽게 각계각층의 사람들과 대

화도 가능해진다. 얼마 전에, 클림트의 그림을 수집하던 한 수집가는 클림트를 좋아하는 어떤 수상이

비공식적으로 집에 그림을 보러 오겠다고 전화를 해서, 자연스레 저녁식사로 이어갔다는 이야기를 들

은 적이 있다. 때로는, 이처럼 그림 하나가 민간 외교사절 노릇까지 톡톡히 하는 것이다. 돈만 있다고

해서 사회적 명사가 되지 않는, 이 나라의 풍토를 보면 몹시 배가 아프다. 미술품의 소유-수집-기부문

화의 형태는 오랫동안 쌓은 수집가들의 노블레스 오블리주 정신에 속한다. 이 정신을 우리나라에 옮

겨올 수 있으면 좋겠다.

난 그림 볼 줄 몰라 라고 하시는 분들께

그림에 대해 잘 알고 싶다면 첫 번째로 많이 봐야 합니다. 그림을 제대로 감상하는 법은 외국어 공부

와 비슷합니다. 영어문법을 아무리 공부해도 일상회화는 입 밖으로 잘 나오지 않지요? 그것은 해석을

하며 공부하는 습관 때문이에요. 그림도 그림 그 자체의 언어로 이해해야지, 굳이 역사적인 해석을 해

야 한다거나 멋있는 말로 떠받드는 대상이 아니거든요. 그런데 보고 또 봐도 그림 보는 안목이 도통

늘지 않는다고 생각해서 포기하고 싶을 때가 올지도 몰라요. 그래도 절대로 좌절하시면 안돼요. 그림

을 많이 보세요. 외국어도 말을 많이 해야 말문이 트이는 것처럼 그래도 많이 보다보면 눈이 트이는

것이랍니다.

그리고 좋아하는 작가를 발견하시면 몇몇 작품만 보지 말고 그의 작품을 다 볼 수 있도록 시간을 할

애해보세요. 어느 특정 기간에 만들어진 작품이 화가의 대표작은 될 수 있겠지만, 전체가 될 수는 없

거든요. 흐름이 보이면 그림을 해석할 줄 아는 이해력이 생깁니다. 소소한 재미도 있고요. 아마도 좋

아하는 작품이 나타나면, 마치 사귀어보고 싶은 멋진 상대를 만난 기분이 들 겁니다. 아, 그러고 보니

저는 언제부터인가 냄새만 맡아도 도망가던 청국장을 좋아하게 되었습니다. 처음에는 냄새가 코를 찔

렀는데, 지금은 맛이 한없이 고소하더군요. 입맛마저 이렇게 변덕을 부리는 걸 보니, 아직 눈 밖에 있

는 추어탕도 한 그릇 맛있게 비울 날이 올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드네요.

10월 베르메르의 그림을 사랑하다

베르메르, 우리 예전에 만난 적이 있나요? - 10월 8일

나는 우유를 보면 반사적으로 화가 요하네스 DIS 베르메르(1632~75)가 떠오르곤 한다. 굳이 이유를 생

각해보면, 아주 어릴 때부터 전화기 옆 책장에 꽂혀 있던 세계미술관 화집 때문인 것 같다. 베르메르

경매장 가는 길- 13 -

의 「우유 따르는 하녀」가 그려진 커버가 있는 마루를 오가며 자주 그 그림과 마주쳤다. 뉴욕커가

가장 좋아한다는 화가 베르메르. 뉴욕에서 그의 그림을 감상하기 좋은 최적의 장소는 70번가와 5번가

가 만나는 지점에 자리 잡은 프릭 미술관(수집가 프릭의 저택이었다)이다. 그곳은 원하는 만큼의 적당

한 거리를 유지하며 자신만의 시간을 갖기 좋은 곳이다. 프릭은 저명한 예술품 수집가이자 애호가였

다. 그런 그가 1919년 세상을 뜨기 바로 직전에 구입한 베르메르의 「여주인과 시녀」도 이 미술관에

가면 볼 수 있다. 베르메르의 대부분의 후기 그림과 마찬가지로, 이 그림도 화면의 왼편이 미완성이

다.

베르메르는 다작 작가도 아니었으며, 생전에는 거의 그림을 팔지 않았다. 현재 베르메르에 대해서는

별로 알려진 것이 없다. 사인을 하지 않던 습관 때문에 후세 미술사가들에게 골칫덩이로 불리기도 하

는 베르메르는 완벽주의자였다. 자기 마음에 들지 않으면 그림을 완성하지 않았기 때문에 늘 가난과

싸워야만 했다. 마흔세 살로 세상을 떠난 그에 관한 정보의 시작과 끝은 모두 얼마 되지 않는 작품뿐

이다. 베르메르의 그림에서 빠뜨릴 수 없는 것은 무엇보다도 빛이다. 어둠 속에서 도드라지는 렘브란

트의 빛이나 햇살을 담은 모네의 빛과는 다르게, 그의 빛은 잔잔한 호수처럼 사람의 내면을 적셔준다.

이 빛은 「우유 따르는 하녀」에서도 차분하게 발산된다.

자화상도 남기지 않은 은둔자. 그는 당시 사람들뿐만 아니라 후세의 화가들에게도 거의 영향을 끼치

지 않았다. 평범한 화가들이 모방할 엄두도 못 낼 정도로 그림의 구조가 빈틈없이 짜였기 때문이다.

베르메르의 그림을 위작한 20세기의 대가들조차도 이 거장이 원숙기에 그린 작품은 감히 흉내낼 시도

조차 못했다. 전통적으로 미술사가들은 한 화가가 그린 그림들 가운데 구도가 좀 더 복잡한 그림이

더 나중에 그려졌다고 판단하지만, 그는 특별히 이례적이다.

경청의 힘 - 10월 18일

미국 사람들은 일은 그다지 뛰어나지 않아도 말을 잘해서 유능해 보이는 경우가 종종 있다. 그럼에도

중요한 건 다른 사람의 말을 잘 들어주는 경청이 아닐까 싶다. 상대방이 내 말에 재치 있게 응수하며

비수를 날리더라도 그 자리를 불편해 할 필요가 없다. 그의 이야기를 진심으로 들어주면 대화는 자연

스레 편해지기 마련이다. 말을 잘 하는 것보다 잘 듣는 것이 우선이다. 지식을 가진 사람은 말을 잘하

지만 지혜를 가진 사람은 잘 듣는다고 한다. 생활 속에서 이 말을 지키려고 노력하지만 쉽지 않은 일

이다. 원래 빈 수레가 요란한 법인지라 여간 어렵지 않다.

11월 집에 미술관을 짓는 사람들

경매장 생중계실 옥탑방 - 11월 11일

아침 9시 45분, 20번지 크리스티 창고 옆 옥탑 방에서 경매 생중계를 보면서 동시에 뷰잉작업을 했다.

경매사의 지시를 들으면서 컴퓨터로 현재 진행 중인 사진을 관중들에게 보여주는 일을 뷰잉이라고

한다. 주로 인턴들이 이 일을 담당한다. 극히 단순한 일이었지만, 무려 200개의 슬라이드를 넘긴 후에

찾아오는 후련함이란 이루 말로 표현할 수 없다. 경매장에서 시시각각 올라오는 가격을 입력하는 할

아버지의 작업 모습을 지켜보았다. 달러, 엔, 유로, 홍콩달러, 파운드로 각각 환산되어 표시되는 가격

변화 스크린은 경매사의 오른편에서 관중들에게 경매 상황에 대한 정보를 제공한다. 한시도 긴장을

늦출 수 없는 일을 담당하는 이 할아버지의 집중력은 가히 금메달감이다.

경매장 가는 길- 14 -

집에 미술관을 짓는 사람들 - 11월 9일

오늘 우리의 가을 소풍 목적은 허드슨 밸리의 수집가 5명의 집을 방문하기 위함이다. 우리는 뉴욕에

서 일하는 루이스 변호사의 집에 도착했다. 루이스 씨의 수집품은 특정 시기를 바탕으로 하지도 않았

고, 일관된 주제도 없었다. 위험을 감수하는 스타일이긴 했지만, 주제의 노예가 되는 것을 거부하는

수집가였다. 그리고 시장의 논리에 맞춰 그린 그림은 외면했다. 루이스 씨는 변호사도, 큐레이터도, 조

언자도 필요 없이 (개인적인 삶의 기억과 맞물려) 정보를 바탕으로 한 자신의 판단이 가장 중요하다고

말했다. 또한 현대미술에는 믿을 수 있을 만한 일들과 믿을 수 없는 일들, 보고 싶지 않은 이미지, 이

해할 수 없는 괴이한 것도 있지만, 작품들을 대하면서 속속들이 변화를 일으키는 그 어떤 진실이 있

다고 했다. 그리고 아직 유명하지 않은 젊은 현대 작가에게 관심과 애정을 가질 것을 권했다. 그 흔한

눈인사도, 살가운 정도 없었지만 루이스 씨 댁 방문은 오늘 여행에서 내게 큰 수확이었다. 우리는 루

이스 씨 외에도 네 명의 집을 방문하였다. 이런 집들을 둘러보고 나서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그들

은 무엇 때문에 집 안에 미술관을 두고 있는 걸까? 나는 돌아오는 내내 이런 생각을 하고 있었다.

12월 타임스퀘어에서 사과가 떨어지면 새해가 온다

재키 라는 이름의 여자 - 12월 1일

집에 우편물이 하나 배달되었다. 2005년 2월에 있었던 〈케네디가의 별장 소장품〉 경매 안내였다. 이

건 무슨 일이 있어도 가야 한다! 재클린 케네디 오나시스가 가장 좋아하는 작품이 마네의 「올랭피

아」였다는 사실을 들은 것도 얼마 전의 일이다. 그녀의 전시는 추첨에서 뽑힌 사람만 관람할 수 있

다고 하니, 그녀의 인기가 어느 정도인지 짐작할 수 있다. 단, 경매에는 누구나 입장이 가능하다고 한

다.

재키 오, 그녀에게는 으레 우아함, 고상함 등의 찬사가 뒤따랐다. 재키 오의 그림 실력 및 글 솜씨는

수준급이다. 재키 오는 고등학교 때부터 미술사에 심취했고, 미술사 선생님이 그녀의 인생에 가장 큰

영향을 준 사람이라는 말을 남겼다. 그녀의 권유로 딸 캐롤라인은 소더비에서 공부하고 일을 배우게

됐다. 그녀는 특히 앤티크에 조예가 깊었는데, 신고전주의 스타일의 직선 디자인을 매우 좋아했다. 그

녀는 백악관의 식탁을 사각테이블에서 원형테이블로 바꿔 서열을 가늠하지 못하게 했고, 일반인을 대

상으로 한 백악관 투어 프로그램을 최초로 만들었다. 이 프로그램은 현재까지 계속 시행되고 있다.

딸 캐롤라인은 〈케네기가의 별장 소장품〉경매를 의뢰하며 이렇게 말했다. 우리 가족의 별장을 다시

둘러보면서 과거의 일들이 떠올랐습니다. 그곳은 지난 시간에 깊이 연결되어 있어요. 그러나 그것은

지워진 과거가 아니라 마음속에 살아 움직이는 과거이며, 새로운 탄생의 이미지로 이어지는 과거라고

믿습니다. 이제 저는 그들을 축복과 함께 여러분에게 나눠드릴 시간이라고 생각합니다. 저희의 추억이

배어 있는 이 모든 것에 더 큰 사랑을 베풀어주시기를 진심으로 부탁드립니다. 부디 아껴주세요. 이

번 경매로 손때 묻은 모든 물건을 떠나보내기로 결심한 캐롤라인의 말을 듣고 있자니, 딸을 시집보내

는 어머니의 심정이 그럴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오래된 책을 모으는 사나이 - 12월 7일

오래된 책과 편지를 파는 매디슨 애비뉴의 바우만 희귀책 갤러리에 갔다. 갤러리 주인은 내가 갈 때

마다 한 번도 책을 사지 않고 읽기만 한다는 것과 오페라를 좋아한다는 것을 기억하고는 안으로 나를

잡아끌었다. 그러면서 푸치니의 악보와 1906년에 발간된 「나비부인」을 보여준다. 초판은 아니었지만

경매장 가는 길- 15 -

꽤 이른 시기에 발간된 것으로서 푸치니의 사인이 있었다. 그는 화가 샤갈이 그린 「주기도문」이며,

헤밍웨이의 『투우사의 죽음』 초판본, 영화 「아라비아의 로렌스」의 실제 모델인 영국군 장교 토머

스 에드워드의 일기와 편지 등 이것저것 등 꺼내서 신나게 설명해 준다. 그의 말에 귀 기울이고 있으

려니 그와는 좋은 친구 사이가 될 것 같았다. 오래된 책을 모으는 사람이랑 친구가 되는 게 오늘로서

두 번째이다.

망년회 - 12월 19일

오늘 망년회 준비 때문에 파티장을 꾸밀 꽃이랑 리본을 고르려고 나왔다. 그러다가 잡지 가판대에 있

던 조지아 오키프 화집을 보았다. 칸나라는 붓꽃을 즐겨 그리던 오키프는 사람의 얼굴처럼 꽃의 한

부분을 화면 가득 클로즈업시켜 그렸다. 꽃들은 모두 제각각의 표정을 하고 있다. 마치 사람처럼 움직

일 것 같아 보였다. 세심한 관찰력으로 겹겹이 묘사한 그녀가 그린 꽃에는 사람들에게 예뻐해 달라고,

더 자주 쳐다봐달라고 구걸하지 않는 고고함이 있다. 누군들 오키프의 꽃처럼 고고하게 살고 싶지 않

은 사람들이 있으랴! 꽃과 리본을 들고 사무실로 다시 올라갔다. 망년회 준비로 우왕좌왕 모두가 분주

히 움직인다.

망년회가 끝나고 집에 오니, 고요하다. 집이라는 건 이래서 좋다. 주전자에 물을 끓이는 동안 소파에

기대어 길가를 내려다본다. 또 오늘 어떤 책을 볼까 호사도 부려가며. 아, 정말이지, 오늘은 지쳐 병이

라도 날 것 같았는데 집에 오니 한결 낫다. 내가 쉴 공간이 허락된 것은 얼마나 큰 행복인지 모른다.

부엌에 차를 한잔 더 마시러 들어갔다가 쏜살같이 스치는 생각! 냉장고에 넣어두었던 팥 아이스크림

이 떠올랐다. 마치 주머니에 손을 넣었다가 만 원짜리 지폐를 한 장 발견한 기분이다. 조심스레 뚜껑

을 딸 때의 그 스릴! 아이스크림, You are sweet! 이 순간만큼은 오키프의 꽃처럼 고고한 시간이 아닐

수 없다.

경매장 가는 길- 16 -